
“...”
“...”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의 모습에 라파엘은 말을 하다말고 나를 제 뒤로 숨겼다. 뒤로 물려졌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라파엘은 외국에서 온 사절이었고, 저 사람은 우리 관리였으니까. 때문에 라파엘의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사헌.”
“안녕하십니까. 승문원도 아니고 전객사 소속도 아닌 당신이 왜. 외국의 사절과 함께 다니고 있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절님이 저희 쪽 관에 궁금한 게 많다고 하셔서...”
“그래서.. 그. 어쩌다 보니 사포서와 이 곳 전함사까지 오시게 되셨다고요.”
“라파엘님.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 해주세요.”
“아뇨. 이건 저희끼리 이야기해봐야 할 문제 같아서 말입니다.”
김현성은 언짢은 라파엘을 세워두고 나의 팔을 끌더니 구석에 가자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사포서는. 종자가 유출이라도 되면 곤란한 거 아시는 분이. 거기를 들러 가십니까?”
“중요 종자가 있는 밭을 피하고, 정말 지나가기만 했습니다.”
“전함사.. 이 곳도 민감한 내용 아닙니까.”
“대사헌. 우리 함선을 얕보지 않게끔 어느 정보의 정보만을 제공했습니다. 그리 역정 내지 마십시오.”
“정말 확언하실 수 있습니까?”
김현성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김현성을 올려다보며 방긋 웃어보였다. 감찰사님은 뭔지 몰라도 뭔가를 조사하고 계신게 틀림없고 내가 너무 돌아다녔던 거겠지만 나는 그냥 안내를 했을 뿐이다.
“예.”
김현성은 잠시 이기영이 웃음 짓는 모습에 멈칫했으나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외에 최근에도.. 여러 관청을 드나드시더군요. 마치 우리 감찰사들처럼.”
“일이 있어서 간 것뿐입니다.”
“그렇게 다양하게 방문할 사유는 없으시던데요.”
“대사헌. 그런 이유로 감찰을 나오셨던 겁니까? 저희 호조 본관에서는 정직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호조 본관은 그러시겠지요.”
“저를... 의심하십니까? 대사헌.”
웃음기를 빼고 눈을 내리깔며 그리 말하자, 김현성은 또 다시 멈칫 하다가, 눈썹을 찡그렸다.
“...의심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저는 결백하니까요. 대사헌께서 저를 감시하셔도 저는 아무렇지 않을 겁니다.”
“...”
김현성이 비웃듯 입 꼬리를 올리는 것에 넘어갈 필요는 없다. 최대한 온화한 미소로 대답했다.
“얼마든지 감시하세요. 지금부터 많이 감시하시고 많이 관찰하셔서 하루라도 빨리 제게서 의심을 지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사헌.”
“네. 그러지요. 산사.”
멀리서 안절부절못하던 라파엘은 나와 김현성이 으슥한 곳에서 다시 바깥으로 나오자 안심하며 찰싹 달라붙었다.
“...”
“가시죠. 라파엘님.”
“...네? 네.”
라파엘은 김현성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가 걸어가는 것을 따라 걸어왔다. 김현성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굳은 채로 따라오는 모습만이 보였다.
"곧 승문원에 도착하겠습니다. 오늘은 어떠셨습니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혹시... 조선에 있는 동안 또 만나주실 수 있겠습니까? 산사..."
"언제든지요. 사절님."
라파엘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쓴 맛이 느껴지는 웃음을 짓고 말했다.
"다음을 기대하겠습니다. 산사님."
그리고 전함사에 들른 이후부터였다. 지난번에는 시선이 가끔 느껴졌다면, 지금은 노골적으로 시야에 김현성 대사헌이 잡혔다. 어딜 다녀도 근처에 김현성이 있었다.
퇴궐 후에 자택의 정방에서 목욕을 하던 중 시선을 느끼고 하인을 물렸다. 목욕용 겉옷을 걸친 후에 정방 안에서 소리치자,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욕까지 따라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감시에 쉬고 안 쉬고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감시하는 거야. 정방의 창문을 열어 김현성을 바라보자 김현성은 멈칫 거리더니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 내가 목욕을 하자마자여서 불쾌했을 테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대사헌. 밀착감시 잘 해주시고... 제 오해가 하루라도 빨리 풀리길 빌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대사헌이 누그러지길 바라며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었을 땐 김현성이 고개를 돌린 채였다. 내 인사는 받기 싫다 이거지? 그러건 말건 잘 보여야겠지. 하인을 시켜서 대사헌께 따뜻한 차와 먹을 것을 내가도록 했다. 이 정도는 뇌물은 아니니까.
아침에 출근할 때도, 호조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덕구의 부탁으로 병조에 갈 때에도, 어디론가 갈 일이 있을 때면 대사헌은 나를 따라다녔다. 정말 친한 친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개인적인 사색의 시간, 취미로 시간을 보내는 것마저 따라 나섰다. 친우에게 미안해져서 약속을 조금 미루었더니 이번엔 다른 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부탁을 하거나, 부탁의 호의를 건네고 가기도 했다. 호의를 받았을 때는 어찌되는가. 조마조마되기도 했지만 김현성이 아무말 없는 것을 보니 이런 정도의 호의는 괜찮은 것으로 보나 싶다. 아니면 기준이 있나?
"대사헌. 계시죠. 그냥 나와서 같이 걸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싫습니다."
"어차피 궁으로 출근하는 길 아닙니까."
"..."
"...뭐, 대사헌을 존중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 이기영이 걷는 중, 불한당이 나타난다.
"네 놈! 죽여 버리고 말겠다! 네놈의 가문이 잘 먹고 잘 사는 만큼 우리가 가난한 거라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서 꺾은 골목으로 이동 후, 사이로 뛰어 돌담을 넘으면 따돌릴 수 있었다. 돌담길 사이에 누군가의 집의 벽을 넘은 뒤,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달렸다.
멀리서 불한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 새끼 같은 자식!"
이기영은 아주 적지만 이런 위협에 노출 된 적이 있었던 터라 담의 높낮이가 달라 넘어들어도 다른 사람들이 넘어가는 모습을 못 보는 곳을 미리 꿰어두긴 했지만... 대사헌이 좀 도와주면 덧나나? 왜 지켜보기만 하는 거지? 조금 치사한데.
그렇게 도망치고 호조에 출근한 뒤, 서류를 보던 차에 점심시간에 라파엘이 찾아왔다.
"산사님... 점심 같이 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라파엘님."
라파엘은 여전히 방긋방긋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국 사절과 같이 갈만한 곳이라.. 마땅히 좋은 곳은 모르지만 그래도 사절들을 위해 있는 식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방을 빌려 야해서 돈이 조금 들었지만 그래도 이정도는 이기영의 직위 상 과한 소비는 아니었다.
"라파엘 님. 궁과는 달리 소박하지만 맛이 난 집이랍니다."
"확실히 맛있습니다. 특히 기영님이 추천해주셔서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라파엘님은 조선에 온지 이제 나흘째이시죠. 어떠셨습니까?”
“조선의 문화도 즐겁고 음식도 좋지만 백성들이 조금 궁핍한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라파엘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다면 좋겠군요..”
“제가 열심히 설득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강과 나무들이 참 아름답다는 거였어요.”
“맞아요 이맘 때 쯤에는 나무들의 색상이 노란색부터 분홍, 빨강, 초록, 갈색으로 다양해지죠.”
“빨간 색만 알았는데... 다른 색상도 있다면 산사님이 안내해주실 수 있을까요?”
“워낙에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긴 하지만 퇴궐 후에 나가는 것이 괜찮으시다면 퇴궐 후에 보여드리도록 하죠.”
“전 너무 좋아요. 이기영님.”
라파엘이 이기영의 손을 잡는 순간에 창문의 창호지가 쭉 찢어지더니 방으로 자객이 들이닥쳤다.
"죽여 버리겠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자객이 올 정도로 율하가 뭔짓거리를 했다고 생각했을 리 없는데, 뭐지?
"뭔가 오해하신 겁니다!"
율하가 자객에게 까진 하지 않을 테고 사절도 이 곳에 연이 없는 사람이라 원한을 살 사람은 없었다. 저 자객들은 우리와 관련 있을 리가 없었다. 외치는 순간에 방문이 급하게 열어 젖혀지더니, 김현성이 등장했다. 자객들의 검이 대사헌을 향해 날아갔었는데 전부 우수수 잘려나갔다. 김현성은 부드럽게 빙글 돌아 자객들의 뒷목을 쳐 모조리 기절시켰다.
"자객이라. 꽤나 큰일을 저질렀나 보군? 산사."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대사헌."
"이 자들을 심문한 후에 좀 더 들어보지."
그렇게 궁으로 돌아간 우리는 대사헌의 명에 의해 대사헌의 방에서 참고인으로서 갇혀있게 되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저는 너무 걱정이 돼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절님."
라파엘은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을 떨기에, 손을 마주 잡아 안심시켜주었다.
라파엘이 웃으며 내 손을 잡아왔다. 라파엘도 뭔가 불법을 저지를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고, 나도 떳떳한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어?
“혹시 뭐가 잘못되더라도 기영님은 뭔가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걱정하지마세요. 라파엘 님. 저희는 잘못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무슨 일도 피해도 없을 겁니다.”
라파엘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보니까... 기영님의 얼굴이...”
“네?”
“긁혀서... 다치셨어요.”
“그랬었나요...”
“나쁜 자객들이... 기영님을... 아프지는 않으신가요?”
“너무 걱정 마세요. 라파엘님.”
“이 곳 관청은 조금 너무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당신처럼 연약하고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했을 리가 없잖아요.”
라파엘은 양 팔을 벌려 내 몸을 감싸왔다. 타지에 와서 범죄에 연루된 것 같자, 불안해서 그런 것일까. 나도 팔을 들어 라파엘의 몸을 같이 안아주었다. 라파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이번 서역의 사절은 너무 어린 사람을 보낸 거 아닌가? 이렇게 힘들어 하잖아.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조혜진이 라파엘을 불렀다.
"라파엘 사절님."
라파엘이 나가고 나서 혼자 앉아 있자 너무도 이것저것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정말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싶어서다. 며칠 전 신경 쓰이던 시선도 그러하고. 감시도 그러하고, 이번 자객까지 들이닥치자 아무래도 나 아니면 이건 율하겠다 싶었다.
율하가 뭔 짓거리를 하는지는 사기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큰 조직이라도 혹시 건든 것은 아닌 지까지 생각이 미쳤다.
설마 상대 조직에서 살수까지 고용한 것 아닌가? 큰일인데. 라파엘은 사신이라 금방 풀려날 테고 김현성 대사헌의 감시가 끝나는 순간 내 목숨도 큰일 나게 생겼다. 정말 큰일인데.
율하는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집에도 못 돌아오고 바깥을 돌아다니나?
밖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악!!!!"
뭐? 분명 이 목소리는 라파엘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할 새도 없이 조혜진은 나를 불렀다.
"이기영 산사."
뭐 됐다. 뭐라 해야 질문이나 고문이나 라파엘이 당했을 뭔가를 피해가지? 하고 방문을 열었는데 김현성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객 일은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그 무슨 일이 있긴 한데... 산사와는 아직 이야기를 나눌 게 없으니 사건 경위만 여쭈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라파엘과 관련이 있는 거 같으니 라파엘님과 같이 다니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일인지 몰라도 몸을 사리는 것이 중요하다.
"예. 알겠습니다. 대사헌. 그런데... 라파엘님을 데려다 드려야 할 텐데요."
"아. 조혜진 감찰사가 데려다 주실 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문인 것은 많았으나, 오늘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오늘도 정말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마지막에 김현성의 태도와 라파엘님의 비명이 자꾸 생각이 났지만 개인 적으로 물어보거나, 아니면 라파엘에게 찾아가 물어봐야겠다. 밤에 정방에서 목욕을 하던 중 바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직도 감시를 하고 계시나..? 대사헌도 참 힘드시겠어.
이야기를 좀 나눴다가 대사헌에게 따뜻한 차도 드리고 그래야겠네.
"이만 됐습니다."
시종을 물리고 겉옷을 걸친 채 창문을 열었다.
"대사헌. 오늘도 수고하십..?"
그러나 창문 밖에는 불한당 8명이 복면을 한 채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창문을 다시 닫았으나, 잠금 쇠를 걸지 않은 창문은 쉬이 열려버렸다. 불한당들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는지, 포대 자루와 밧줄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밧줄 던지기를 연습이라도 했는지 밧줄을 던지자 내 몸에 착 감겨서 나는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불한당들은 그대로 나를 끌어내려 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포대자루에 넣어버렸다.
이런 시바! 뭐야! 어째서 저택에 어째서 불한당이 있는 거야!
우리 집 무사는? 그 무사보다 이 자식들이 더 세다고??? 불한당들이 이렇게 들이 닥쳤다는 것은...
우리 집의 호위 무사보다 센 놈들이니까...얌전히 있어야 하나?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고 대사헌이 없다는 건 감시가 풀린 건가? 일단은 소리라도 질러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할 텐데.
“음읍읍읍읍-!!!!!읍읍읍-!!!!”
포대 자루를 메고가는 자가 들고가기 어렵도록 몸을 흔들어 발버둥 쳤다. 밧줄로 묶인 부분이 움직일 때마다 쓸려서 괴롭다.
발버둥 치는 것에 짜증이 났는지, 어깨에 나를 메고가던 불한당은 나를 내려놓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이 녀석들이 내 상태를 보려고 포대 자루를 풀어주겠지?
하지만 불한당은 포대자루를 풀기는커녕 엎어놓은 채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이율하. 이 요망한 계집. 가만히 있어야지. 하. 고것 참 엉덩이가 부드럽고나."
율하? 유울하? 율하라고??? 이율하 ㅅ바.넌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아니 이 놈들이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면서 율하 이야기를 하는데. 그럼 오늘 낮의 일도 결국 율하때문 아닌가? 뻔했다. 율하는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도박꾼이나 불한당들을 사기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게 왜 나쁜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거야. 지난번에 내가 율하에게 그정도면 되지 않았냐며 훈수를 뒀을 때 코웃음을 치던 율하가 떠올랐다. 어딘가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발버둥을 쳐봐도 밧줄에 내 살이 까이고 고통스럽지만 신음 조차 내뱉지 않았다. 내뱉어봐야 이들이 기뻐할 뿐이니까. 포대자루 채 내던져진 후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루의 입구를 풀어봐."
어쩐 굵은 목소리의 사내가 명령조로 말했다. 곧이어 누가 자루의 입구를 풀라하여 겨우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여긴... 어딘가의 창고인가?
"어디 매 번 네가 위인 듯이 행동하다가 불리해진 상황이니 어떠하냐? 니를 그렇게 등쳐먹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도망가면 꼬리가 안 밟힐 줄이라도 알았던 게냐? 요망한 계집."
율하가 관계되어 있겠지만 상황을 모르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자, 적은 원통해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적의 말로 미루어 보니 율하가 지방에서 내기를 하고 이겨서 저 사람에게 대가를 받았으나 사실 그게 사기임이 들통났고 등쳐먹은 율하가 도망을 갔기에 못 찾아 수소문 하던 중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그래, 너 말 잘~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데 아무래도 저 적의 이야기보따리가 터진 것 같으니 흥미로운 척 들어주기만 하기로 했다.
"앗!!! 내가 왜 너에게 이런걸 풀고 있지! 네가 아무튼 사기를 쳤으니 네가 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율하! 네게 대가를 받아가마!"
불한당들과 적이 웃기 시작했다. 이미 포대 자루의 아래에 있는 손목의 밧줄은 풀었으나... 아직 몸통의 것은 풀지 못 했는데. 어쩌지? 뭐가 일어나려는 거지?
-쾅!!
싶을 쯤에 창고의 문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조혜진과 김현성이었다. 감찰사 둘은 입구의 불한당과 적을 순식간에 패대기쳤다. 조혜진은 패대기 친 적을 제압하여 밧줄로 묶어버렸다.
김현성은 묶여있는 이 쪽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런 사건에 또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건지."
조혜진은 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도박단 너희를 잡으러 왔다! 순순히 오라를 받거라! 순순히 잡히지 않는다면 사형이다!"
"죽여 버리겠다!"
"으! 관리가 여기를 어떻게!!!"
김현성의 눈매는 싸늘해졌다.
“역시... 산사 당신?”
그런데 적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김현성이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에 적이 소리쳤다.
"계집, 계집을 챙겨! 이율하는 뺏길 수 없지!"
"..아녀자, 율하?"
김현성은 그 눈빛 그대로 적을 보았다. 고맙다! 적아! 적 이 녀석! 이야기 보따리 터진 녀석! 네가 날 구했어!
"이 자는 계집도 율하도 아니다. 빌어먹을 자식들아."
한차례 적들과 싸움을 벌인 후, 김현성이 이기영을 포대자루에게 꺼내주면서 조혜진 감찰사에게 말을 했다.
"적들을 포박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밧줄을 풀어주더니 대사헌은 갑자기 부끄러워하며 말을 건넸다.
"...괜찮으십니까? 밤바람은 찹니다. 산사. 너무 얇게 입고 계시군요..."
"감사합니다. 대사헌.. 저는 제가 어떻게 되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산사. 괜찮으신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김현성은 팔이나 다리를 보다가 조심스레 포를 살짝 걷어 밧줄에 묶였던 부분을 확인했다.
아이고 아파라. 살짝 놀라 움찔거렸더니 김현성은 깜짝 놀라며 벗기던 것을 잠시 멈칫했다. 김현성이 포를 벗기고 난 후에 아까 밧줄에 쓸려서 아팠던 곳들을 내려다보자, 전부 피멍자국으로 물들어 있었다. 김현성도 그 피멍들을 봤는지 소매에서 연고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김현성 대사헌은 워낙 일이 싸움과 관련된 일이시니 금방 듣는 좋은 약을 쓰실 게 틀림없다. 아무리 아버지가 의원이라 할지라도 궁에서 취급하는 최고급 약보다는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대사헌이 팍팍 써주면 정말 좋은 것이었다. 대사헌! 팍팍 발라줘요.
"산사님.. 험한 꼴을 당하셨나 보군요... 산사님을 부르는 것만 봐도 관련이 없는 자들인데 산사님께 이리 대하다니. 산사님. 충격 받으셨을까요."
"아뇨. 대사헌. 별 일 없었으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잠시 만요. 산사. 조금 아프실 지도 모르겠지만.. 연고를 바르겠습니다."
김현성이 살며시 살펴보더니 연고를 살짝 살짝 바르며 두껍게 발라주기 시작했다. 김현성의 그 세심한 손길에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다. 대사헌은 묘한 분위기가 있으시네.. 그런데 집중하는 김현성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빛났다. 그의 잘생긴 외모가 빛을 받아 부각되었다.
김현성 대사헌이나 조혜진 감찰사나 워낙 밤엥 활동할 일이 많으셔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옷의 색이 어두웠다. 높은 직위에 있어도 흔한 박 하나 넣지 않은 그 옷차림으로도 김현성의 외모는 빛났다. 세상에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조각같은 미모를 넋놓고 바라보자, 김현성은 내 눈동자를 마주 바라봐왔다.
김현성은 제 포를 벗더니 나에게 덮어주었다.
그대로 안아들더니 달려서 나를 저택에 두고 방문을 굳게 닫은 것을 확인 후에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산사.”
다음 날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어째서인지 감시를 그만뒀을 터였던 대사헌이 자택의 돌 담 위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대사헌.”
“안녕하십니까.”
“어제부터 계셨던 겁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을 처리하러 궁에 가있었으니까요. 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와 나란히 걷지는 않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대사헌?"
"..."
“농담입니다. 대사헌님 그럼 한 숨도 못 주무신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대사헌의 안색을 살폈지만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크 서클이 생겼는지 생기지 않았는지도 눈치 못 챌 만큼의 그의 동안에 새삼 세상이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내가 들여다보니 김현성은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봤다.
“그... 산사. 뭔가...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뇨... 밤을 새신 것 같지 않은 동안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
대사헌은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가렸다. 동안이라는 칭찬을 못 받아봤던 것인지 칭찬에 약한 듯 했다. 잘 생겼는데 험한 인생을 살아온 거 같다. 조금 불쌍하네.
관복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집을 나서는데 대사헌이 말없이 따라 나섰다. 또 멀리서 지켜볼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나란히 걷네?
"같이 출근하는 모양새가 싫으신 것 아니었습니까?"
"일로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감시하고자 산사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걱정이 됩니다. 일단.. 오늘 산사의 일정은 취소되실 겁니다. 저희 관찰사로 오셔서 또 참고인이 되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산사."
그렇게 말하던 김현성은 대궐을 지난 순간 빠른 걸음으로 관찰사를 향해 걸어갔다.
참고인? 율하와의 관계? 처음 보는 자들인가? 불한당들은 뭘 했는가? 그런 거겠지?
그리고 출근을 하자마자, 대사헌의 말 대로였다.
"산사 이기영은 관찰사로 출두하라."
"받들겠습니다."
바로 정랑의 명으로 오늘의 업무 및 일정은 모조리 취소되었다. 관찰사로 걸어가는 사이에 어느 샌가 대사헌이 웃으며 같이 걷고 있었다.
"같이 갑시다."
관찰사에 도착하자, 김현성은 웃으며 이기영에게 차를 내어주었다. 지난번과 달리 친절하네? 왜? 김현성을 슥 훑어봐도 잘생긴 얼굴이 오늘도 잘생겼다는 것 외에는 다른 바가 없었다. 음..
"대사헌. 불한당들의 조사가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찰사."
불한당들의 조사가 전부 이뤄진 것 같은 모습에 구경을 하며 차를 홀짝였다. 참고인이라면 뭐.. 일이 많지는 않겠지? 이렇게 쉬라며 차도 주는데.
"그럼 이기영 산사. 하나 묻겠습니다. 이율하는 본인의 친누이 맞습니까?"
"네. 그렇기는 한데 만난 지가 오래되어.."
"그리고 이율하가 평소에 하는 행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맞습니까?"
"네. 하지만 이번 일은 저도 모르는 터.."
아니 쉬바,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르는 거냐구. 진짜 이러긴가? 이거 완전 참고인이라 갔더니 사실 범인이었고 내가 감옥에 갈 판이라는 쎄한 느낌만 나는데?
"잠시. 조혜진 감찰사."
"예. 대사헌."
"그는 이번 사건의 죄인도 아니며, 관련이라고는 이율하의 신상에 대해 참고할 만하다 그 정도라고만 말씀드렸습니다."
"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산사."
"네. 감찰사."
"이율하의 성격을 알고 있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무슨 일을 업으로 삼았는지는 모르나, 취미로 불한당들을 골려주러 다닌다고 제게 말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한당에게 엮일까 싶어 지난번에 충고를 하였다가 제 얼굴을 봐주지도 않고 벌써 2년 째, 만나질 못하는 상태입니다."
"얼마나 빈번했는지는 아십니까?"
"그건 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찰사."
"율하님이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그것도..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굶진 않기에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닐지... 싶습니다."
"산사의 정보는 친족관계이지만 얻을 정보는 얼마 없는 듯 하군요. 참고인에서 풀어드리겠습니다. 참고로 현재 산사의 여동생 분은 도박사들과 불한당들을 골려주려 다니며 의적 활동에 심취하신 것 같습니다. 산에서 늑대 등을 잡아 생활을 해결하시는 것 같구요. 오라비이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니 쉬바 남의 여동생을 왜 이렇게 잘 아세요? 하지만 조사하는 기관이니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율하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만난 지도 오래되었고, 자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다 율하가 사용하던 방도 자택의 끝과 끝인 것을 생각하면 율하가 집을 나가기 전에도 많이 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혜진 감찰관. 그 정도면 되지 않았습니까. 잠시 피곤하실 테니 산사는 제 방에서 쉬시겠습니까?"
조혜진이 빤히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곧 둘은 일을 보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 일, 저 일로 서류들을 대조하고 방에 있던 서류를 꺼내기도 했으며 심문을 진행하여 기록하기도 했다. 잡혀들어온 불한당들도 많았기에 조혜진이 서류를 정리하는 동안 김현성이 불한당들을 형조로 옮기는 일 들을 진행했다.
“조혜진 감찰관은 그 서류들의 정리를 부탁합니다.”
불한당들의 심문이 한 차례 지나자, 조혜진은 남은 자들을 줄줄이 포박하여 형조로 이동했다. 지금 말도 안 되는 것은 범인이 이율하의 피해자라면... 라파엘은 왜 비명을 질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건 뭔가 뒤가 더 있다. 관찰사에 사람이 없으니 잠시 방 앞에 있는 탁자의 문서들을 쭉 읽어보았다.
[라파엘은 사절의 자리를 매수해서 밀입국한 자로, 사실 그 대신 백작의 아들이 와야 할 것이었지만 공작의 아들인 그가 왔다]
[그의 신분을 보장한 승문원과 안내 허가를 내준 호조 본관에 엄벌을 내려야 함이 마땅하다.]
뭐? 우리 호조 본관이 전부 엄벌을 받는다구?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율하가 한 일에 호조가 전부 뒤집어쓴다는 건. 일단은 방으로 돌아가야지.
방에서 차를 홀짝이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멀리서부터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렸다. 목이 타는 바람에 남은 차를 전부 털어 다 마셔버렸다. 상 위에 올려진 제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바로 상에서 손을 내린 뒤, 관복의 소매로 손을 감추었다.
“산사. 저희 돌아왔습니다.”
“어제 다치셨던 곳은 어떠십니까? 아직 안 나으셨지요?”
“쉬셔야 할 텐데.”
“... 일단...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대사헌께서 제게 죄송할 일을 하신 적이 있나요?”
왔다. 이거 왔어. 감에 의하면 왔어.
“혹시 라파엘 사절과 관련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날 심문할 셈이었어. 저런 순한 얼굴을 하고서... 역시 왕의 직속기관 답다.
“그렇습니까. 이만 산사도 집으로 돌아가셔야지요. 하루 종일 여기 계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산사의 상처는 이미 호조에도 전달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산사 자택에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김현성과 조혜진은 배웅을 나왔다. 김현성은 돌아가는 길을 호위 해주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율하님 말인데.”
“...네.”
“조사를 하다 보니... 친족인 이율하님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걱정을 했었지만 이번 일로 율하님의 일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니 역시 산사는 피해자겠구나 싶습니다.”
“...”
데려다 준다고 하면서 가볍게 심문할 셈이었나?
“산사님의 친 누이를 욕하려던 것은 아니니. 그 표정은 거둬주십시오. 제가 입을 잘못 놀렸습니다.”
“그런데... 대사헌. 대사헌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 있으셨던 것 아닙니까?”
“아뇨..”
“그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절 데려다 주시는 겁니까?”
“그냥 산사가..”
“네.”
“걱정이 되었습니다.”
김현성이 우뚝 멈추어 섰다. 난 멈추어 선 김현성을 바라봤다.
“제가요.”
“어제 납치를 당하셨을 때.. 복장과 머리를 보건데, 목욕 중에 납치당하신 것 아닙니까. 지난 번에도..봤던 복장..이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현성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조사를 하다 보니 불한당들은 산사를 이율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더군요.”
“제가 율하와 닮아서 위험할 거라 생각하셨다는 말씀입니까?”
“....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제가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산사님은 결국 율하님과는 다른 분 아니시겠습니까.”
“대사헌이 저를 지켜주실 만큼 한가하신 분도 아니시잖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율하님이 걱정을 덜고 집에 돌아오게끔 하려면 불한당들도 전부 잡아들이고, 오빠가 안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
“포도청과 병조 쪽으로 연락이 갔을 겁니다. 포도청 관할로 수시로 순찰할 테며, 병조 쪽에서는 수색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김현성은 이기영의 관복에 묻은 나뭇잎을 떼어주며 말했다.
“저는 산사의 호위를 하고자 합니다.”
“왕의 직속 감찰기관에 속한 대사헌을 제가 일개 호위 무사로 부리게 되다니. 정말 감읍할 지경입니다.”
“그런.. 감읍하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그럼 감열하겠습니다. 대사헌.”
“예.”
살풋 미소를 지은 김현성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나란히 호조로 걸어갔다.
그 때부터 김현성은 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냥견과 같았다. 게다가 같은 관내에서 불한당과 결탁한 자가 몇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호조에 들어서는 자와 나에게 접근하는 자 모두가 김현성의 수색을 받아야 했다.
모든 자가 수색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호위로서는 훌륭했지만 생활하기엔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김현성 대사헌... 너무 갑갑합니다...”
“잠시만.. 그럼 제가 어디 갈 일이 있었으니 그 동안만 얌전히 계신다면 호위를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사헌.”
김현성의 호위로 인해 못 본지가 꽤 되었다. 라파엘이 이율하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지 몰라도 라파엘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승문원으로 달려가 라파엘을 찾았다.
“진청 님. 오랜만입니다.”
“아. 산사. 오랜만입니다.”
“혹시, 라파엘님의 소식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을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아... 조금은 그게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산사. 혹시 대사헌이 언질을 주시지 않던가요.”
“네? 저는 딱히 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제가 듣기로는 형조에 가 있다 들었습니다. 스파이로 의심된다고 한다더군요. 지난 번 사람들을 잡아다가 말려 죽인다는 서당의 괴한 사건에서 그 범죄자가 약물에 중독되었다고 합니다. 그 약물이 외국에서 밀수입 되었다는데 그 밀수입이 이번 사절 중에 한 명과 연루되어있다는 소문이라고 해.”
“그렇지만 그렇게 어린 라파엘이 관련되어 있을까요?”
“라파엘이 본인은 모르더라도 본인의 하인이나 짐을 통해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산사. 형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대사헌이 아직 수색 중이라서 수사 교란을 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어.”
“감사합니다. 진청 교감.”
“이상해. 오늘따라 산사가 진지한 게 이상한데. 위험한 데에 발 들이지 말고.”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입니까? 교감. 교감이야 말로 제 걱정을 다 하고 웃기시는 군요.”
그렇게 승문원을 나서서 형조로 들어섰다. 멀리서 병조의 인원과 포도청의 인원도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나러 온 것 마냥 숨어들어갔다. 지상에 있는 구금 실을 들어가 보니 라파엘이 보였다.
“아... 아, 기영.... 님...”
눈물이 그렁그렁한 라파엘은 내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바로 창살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런 라파엘이 있는 구금 실을 열어 들어갔다. 라파엘이 쓰던 침대에 앉아서 품에서 주먹밥을 꺼내봤다. 라파엘은 고맙게 받아들며 먹었다.
정말 라파엘이 범인일까? 이렇게 자신을 적으로 몰아세우는 사람이 내미는 주먹밥을 쉽게 받아들여 먹는 사람이 마약을 유통한 사람일까?
“제가 사실... 조선을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네. 라파엘님 천천히 말해보세요.”
“그래서 원래 오기로 했던 공작의 아들 대신에 제가 가고 싶다고 졸랐어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우리나라 사람들과 말을 맞추고 들어왔죠. 사실... 밀입국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던 거예요. 저는 너무 단순하고 간단하게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번에 마약 밀매업자가 있다는 상황에서 제가 이렇게 불분명 출신이 되어버리니 범인으로 몰리게 된 거예요...”
“하지만.. 라파엘님. 라파엘님이 절대 하신 게 아니죠?”
라파엘은 나를 껴안으며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눈물을 흘렸다.
“저는 정말 .. 저는 정말 범인이 아니에요. 그저 조선을 좋아했을 뿐이었어요.”
“잠시 만요. 라파엘님. 그렇다면 다른 사절들은 누가 있습니까.”
“저랑 같이 온 사절은 이토 소우타라는 일본 분과, 샤오린이라는 중국 분이 있지만 그 분들도 친절하고 멋진 분들이라서 그럴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짜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라파엘 님... 혹시 이율하.”
“...?”
라파엘은 어리둥절했다. 그래 라파엘이 진짜 범인이라면. 지금 쯤 그에게 접촉하는 관리가 있었어야 했으니까. ....진청이 말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 접촉하지 말라고 했던 거겠지.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기영님..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라파엘이 잡아당기며 끌어안았지만 내가 일어서려는 탓에 넘어지면서 그의 침대에 눕고 말았다. 뒤통수가 딱딱한 침대에 부딪혀서 어지러운 사이에 라파엘은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 기영님 괜찮으세요.”
슈바. 허리도 아직 안 나았는데..
“으윽...”
라파엘은 내가 배를 잡아 쥐며 아프다는 티를 냈음에도 그 곳을 살살 쓰다듬었다. 아프잖아 이 새끼야!
“아으윽...”
라파엘이 순간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쳐왔다. 어째서? 라파엘은 나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눈을 감고 키스해왔다. 왜? 가볍게 키스를 해온 라파엘은 말했다.
“혹시 기영님도 저랑 만나고 싶으셨나요? 저랑..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셨나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라파엘 님... 으윽...”
“하지만 지금.. 고통스러워하시는 건...”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건 다쳤기 때문이다. 성범죄자.”
뒤에서 대사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터입니다. 산사. 호위가 느슨해지면 이 쪽으로 오리라는 건 짐작했었습니다.”
“대, 대사헌...”
몸을 일으키고 싶지만 잘 일으켜지지 않았다. 그는 약간 분노한 상태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조사를 계속해서 하지 않았으면... 산사는 이 곳에 있었던 것만으로 죄인으로 형을 집행당했을 겁니다. 심증이 충분해졌을 테니까.”
라파엘은 손을 덜덜 떨며 내 몸을 일으켜 주었고 앉아서 대사헌을 바라보니 그의 뒤에는 아무리 봐도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포박을 당한채 조혜진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진범을 잡으면.. 당신이 안전해질 테니까 그리 했습니다. 하지만.. 저 자가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제 불찰입니다.”
김현성은 검을 빼드려고 했었지만 모두가 그를 말렸다.
“대사헌.. 제가 잘못해서 라파엘님을 잡고 넘어지는 바람에.. 그런 것입니다. 아니에요 그런.. 이상한 것은 아니었어요. 사고 였어요.”
“넘어졌으면 거기서 끝났어야 했었죠. 혀를 움직여댈 것이 아니라.”
“대사헌!”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현성은 그저 이 사건의 책임자이며 해결하려는 대사헌이 아니던가? 왜, 김현성이 화가 난 채로 내 몸을 잡아 끌었다. 머리를 부딪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내 몸을 부축하던 김현성은 몸을 지탱하며 말했다.
“그래도 라파엘의 구금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범인이 잡혔다면.. 그리고 저기 끌려가는 도박꾼들과 불한당들이 모두 잡힌 거라면.. 더 이상의 피해자는 필요 없잖아요. 대사헌. 그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조선을 좋아할 뿐이었습니다.”
김현성은 내 몸을 안아들고 자신의 집무실로 가며 그리 말했다.
“라파엘 그는 당신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김현성은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입술을 입술로 물어 잡아당기며 말했다.
“제가 먼저 맡아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