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監察 w.이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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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오늘은 과거 시험의 발표 날 이었다. 덕구의 시험결과가 궁금했기에, 나는 궐 앞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면밀히 살피다가 덕구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었다. 나는 그대로 퇴궐 길에 덕구의 집으로 향했다.
덕구와 나는 신분은 달랐지만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양반 가문 출신이긴 하나, 아버지의 의술이 겨우 가문의 생계를 유지해주어 근처의 서당 중 좋은 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평민이지만 부잣집이었던 덕구와 만나게 되어 친해지게 되었다. 워낙에 덕구가 소탈하고 밝은 아이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다.
"덕구야. 이제 우리 같이 궁에서 한 솥밥을 먹는구나."
"형님이랑 한 솥밥이라니 너무 든든하오!"
"그래서 말인데 그 국밥이 맛있는 주막이나 가자. 덕구야."
"나도 거기 가고 싶었는데 어찌 알았소, 형님?"
"전에는 자주 갔었는데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서."
워낙에 신선한 재료로 맛있게 음식을 하는 집이라 주막은 여전히 붐볐다. 우리는 국밥 한 그릇씩과 고기, 막걸리를 시켰다. 오랜만에 만났다고는 했지만 덕구랑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바로 지난 주말이었다. 그냥 우리가 주막에 온 지가 꽤 된 것 뿐이고 지난 주말에 덕구가 조마조마하다며 걱정하는 것을 장터에서 닭을 한 마리 사다주며 달랬던 것이 기억이 났다.
"지난주에 걱정하지 말라 했잖냐."
"그래도 역시 필기는 조마조마했소. 형님. 물론 실기는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지만."
"그래 덕구야. 필기가 좀 조마조마 했지만 그래도 붙었다고 필기를 게을리 하면 안된다. 승진을 위해서는."
"암. 형님 말대로 이론 공부도 열심히 할 거라니까. 그런데. 형님. 내가 형님보다 몇 단계 아래인 거요? 알고는 있는데 시험으로 치자면 얼마나 필요한 거냐니깐."
"아니 그냥 한 단계야. 덕구 네가 워낙 시험을 잘 쳐서 9품이 아니라 8품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
나는 9품부터 시작했던 것을 떠올리면 역시 덕구는 나보다 더 잘하는 놈이 분명했다. 이 놈은 자신감이 없어서 문제랄까. 덕구를 다독이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거기 자기? 너 어디서 많이 봤는데! 너 본관 소속이지! 나, 알지?"
뒤를 돌아보니 포도청의 대장인 좌포도대장 차희라가 평소의 관복도 아니고 사복으로 팔을 걷어붙이고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을 얼마나 마셔댔던 것인지 술 냄새는 옆 자리인 우리에게까지 풍겼다. 워낙에 강한 분이라 추한 꼴은 아니었으나 좌포도대장의 반상에 혼자만 앉아있다는 것이 벌써부터 위험하다는 신호를 알리는 듯 했다.
"형님, 이 분은 누구쇼?"
"아. 아이고, 좌포도대장 나리. 덕구야 좌포도대장님이시다."
"나 차희라다."
"아이고. 좌포도대장님 안녕하시오."
"아니, 산사! 우리 포도청에 지원 너무 적잖아. 좌랑한테 말해. 우리 지원을 이런 식으로 하면 민생 돌보기 힘들어 진다고. 아니면 내가 참판 불러? 어? 참판! 참의!!"
"일단은... 취하셨습니다. 희라님."
차희라가 이야기하는 것도 무엇인지 안다. 포도청과 병조 둘 다 지원을 원하는데 실질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포도청이고, 병조는 전시가 아니면 일이 없다시피 하니 병조보다 많이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번의 서류 수리 시에도 차희라는 우리 정랑님과 좌랑님에게 이런 식으로는 포도청의 일이 돌아가다가도 막혀버린다며 내부가 이러면 어떻게 우리가 일을 하겠냐 하셔서 호조 측에서 급하게 자금을 벌기 위해 내부 자금을 굴려 금을 마련하여 포도청을 지원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도 기근이 들어서.. 비슷한 꼴이 될 것 같은데.. 승문원 쪽에서 외교를 좀 해서 다른 나라의 식량을 들여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급이 낮은 산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었기에 당장에 생각나는 건.. 호조 내부의 돈을 투자하여 이득을 취한 뒤 포도청을 지원하거나, 승문원의 진청 교감님께 또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상의가 필요한 일이며 나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희라 님에게는 이리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희라님. 내일 술이 깨시면 더욱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일단은 오늘의 이야기는 정랑님 및 좌랑님께 다 전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확언을 안 한단 말이지, 산사?"
내 번지르르한 말을 눈치 챈 차희라는 미간이 모여졌다. 험악한 그 분위기에 놀란 덕구는 튀어나와 희라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고, 나리.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되겠소. 다른 사람 눈에 안 좋게 띄겠소. 관직에 계시는 것 아니오?"
"아. 그래. 내가 일반 평민이나 양반들 만날 일은 많은 사람이니 이쯤 해둘게."
희라는 번듯하게 일어섰지만 누가 봐도 살짝 씩 비틀거리는 것이 걱정스럽게 했다. 아무래도 덕구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내 상과 좌포도대장의 상의 값을 치르고 나서자, 덕구는 차희라를 들쳐 맨 채 말했다.
"일단 포도청으로 가면 되겠소?"
"그러는 게 낫겠다. 덕구야. 포도청은 언제나 가동 인원을 두고 있으니, 포도청으로 가면 좌포도대장을 맡길 수 있겠지."
"알겠소. 형님."
"거기는 임시 숙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포도청에 도착하자, 2명의 인원이 이 한 밤중에 일을 보고 있었다. 그 들 중 한 명이 놀라서 뛰쳐나와서는 이야기 했다.
"희라님! 간단하게 저녁 식사만 하고 산책하고서 돌아오신다 했는데. 두 분이랑 같이 드신 겁니까?"
"뭐... 그렇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그래서 말입니다만, 임시 숙소로 저희가 데려가도 좋겠습니까?"
"잠시. 저희 임시 숙소는 일반인은 출입 금지오."
"저는 병조 소속이오."
"저는 호조 소속입니다."
"아, 녹사와 산사시군요. 그럼 따라오십시오."
"저는 사실 좌포도대장님께서 이렇게 취한 것은 처음 봅니다. 워낙에 마음이 편한 친구 분들이셨나 봅니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웃으며 대충 둘러 대니, 낭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희라를 눕혔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 참에 갈색 머리의 무사를 보게 되었다. 저 분은, 관찰사 소속의 감찰사 조혜진이다. 포도청을 감찰 나온 건가?
"너무 늦은 시각에 왔나봅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감찰사."
낭청이 인사를 하는 것을 스치듯이 보면서 덕구와 포도청을 나섰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어찌된 일인지 덕구가 우는 얼굴로 출근길에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형님... 큰일이 났소..."
"왜?"
"내 패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소..."
"내일 첫 입궁 아니야?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오..."
패를 받고서 주막에서 자랑했던 것이 바로 어제였는데 오늘 패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음? 어제 나랑 있을 때만 해도 가지고 있었잖아.
"잠깐만. 어제 포도청 임시 숙소에서는 가지고 있었잖아. 그 이후에는 어디에 갔어?"
"바로 집으로 갔소."
"집엔 없었고."
"어떻게 하오, 형님."
"일단은.. 점심시간에 포도청으로 와. 한 번 가보자."
출근하기도 전에 패를 그렇게 잃어버리는 자는 파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던 건지 점심시간에 만난 덕구는 얼굴이 거무죽죽해져서는 울상이었다.
"걱정 마. 덕구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아직 하루가 지난 것도 아니다."
"형니임.."
"포도청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을 안고 포도청에 갔더니 웬걸, 차희라가 덕구의 패를 들고 흔들고 있었다.
"칠칠맞게~ 너. 내 아래였으면 연호하며 하루 종일 기합을 받았을 거야."
"고... 고맙소."
덕구와 기영이 망연자실한 이유는 희라가 농을 던져서가 아니었다. 덕구의 패가 반쪽이 나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거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아침에 내 옆에 이렇게 부서진 채로 있더라고. 뭐 일단 잃어버린 것은 아닌 것이 될테니 상서원에 가서 교환을 요청해봐. 상서원에서 새로 발급해줄지 누가 알아."
"아무튼 감사하오."
"감사합니다. 좌포도대장."
하루 만에 잃어버린 자도 파면이지만, 국가의 재산인 패를 하루 만에 박살낸 자는 어찌 될지... 다행히 덕구의 신분이 무관이라 다행이지, 문관이었으면 파면 감이었다.
"날 데려다 줘서 고맙긴 한데, 이거 건네주는 건 뭔가 더 필요할 것 같아? 자기."
"저요?"
"아니 저쪽 자기."
차희라의 손가락은 덕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막 입궐하는 덕구에게 시킬 일이라면 덕구 관직에 관한 일이겠지. 덕구는 녹사여서 훈련원의 낭청들을 교육하는 일도 할 것이다. 아마 그 교육 과정에 실기가 있었지 아마. 그걸 원하는 건가.
"나요?"
"그래."
"자기는 훈련원 일도 겸할 거지? 패를 보니 그렇던데."
"맞.. 맞소만."
"우리 산적을 치우는 일 할 때 일손이 부족해서. 훈련 겸 우리 일 좀 도와달라구.."
"그건 나라를 위해 이로운 일이니 괜찮소. 일단 여쭤보고 괜찮다 하시면 바로 돕겠소."
"말이 통하네~"
둘에게는 서로 이득인 이야기였다. 당연하지만 덕구는 훈련원의 지도를 위해 스케줄을 짜야할 필요가 있었고, 차희라는 인원 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이었다.
"정말 감사하오. 좌포도대장 나리."
"대신에 다음에 같이 술이나 들지."
"알겠소."
"저희는 그럼 이만 상서원으로 가보겠습니다. 좌포도대장."
"그래 잊지 말고. 도와줘야 해."
생각보다 차희라의 제안이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던 탓에 훈훈하게 헤어졌다. 가만 생각해보면 상서원에 패를 관리하는 자는 김미영이라는 사람인데, 그나마 아는 사람이어서 조금 다행이었다. 워낙 김미영은 철두철미한 자로 유명하기는 했지만 김미영이 예전에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 우리 아버지께서 미영의 어린 자녀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시고, 잠시 돌봐주셔서 그녀 또한 나를 챙겨주는 편이었다.
"곧. 상서원인데... 이거 바른대로 말해도 될까 모르겠소. 형님."
"결국 깨진 건 깨진 거니까."
"그렇소...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말이오."
"뭐 이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하고... 정직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신뢰가 없어지니까. 일어난 일을 감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맞소."
"미영님은 곧은 사람이긴 하지만 착한 분이기도 하셔서 잘 들어주실 거야."
"정말이오? 형님만 믿겠소."
둘은 이조로 이동했다. 그런 이기영과 박덕구를 조혜진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덕구님. 패가 깨졌군요. 내일이 첫 입궐이셨죠."
"제가 그만! 기뻐서 술을 한 잔 하고보니.. 이거.. 죄송하게 됬소."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다 기영님 보고 봐드린 거예요. 다음부터는 잘 간수하세요."
"고맙소!!!"
"좋게 끝나서 다행이야."
김미영은 선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박덕구는 요청에 의해 훈련원의 사람들과 함께 포도청과 연합하여 산적 토벌에 나섰다. 물론 산적 또한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 않은 자도 있을 터이니 잡아 들인 뒤 형조에서 재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덕구의 첫 입궁이니 바로 만나고 싶었지만 덕구의 일도 중요한 일이기에 산적 토벌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건네기 위해 주막에서 도시락을 사와서 형조에서 기다렸다.
언뜻 멀리서 조혜진이 이쪽을 지켜보는 것 같았지만, 요새 조혜진은 병조 쪽에 자주 보이던 터라 신경을 쓸 만한 것은 아닐 터였다.
"형님!"
"덕구야. 오늘 첫 임무는 어땠어?"
"정말 최고였소. 보람차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산적들을 막무가내로 다루지도 않았소. 다 딱한 사연이 있는 자들이더구만."
"원래 산적들이나 도적의 대부분은 농민이야."
덕구에게 도시락을 건네는 중 이상한 것을 느낀 이기영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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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후, 이기영은 호조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갑작스런 감찰이 이뤄졌다.
"감찰을 시작하겠다. 호조 본관의 인원들은 마당으로 집결하라."
"아, 김현성 대사헌!"
정랑 좌랑 할 것 없이 모든 인원이 마당으로 집결했다. 이기영은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들여봤는데, 옆의 산학박사님이 바로 말했다.
"수그리고 있게 산사. 대사헌님은 왕의 직속 감찰 부대의 수장이시네."
감찰은 김현성의 주도하에 이뤄지며, 한 명, 한 명의 서류와 소지품이 세세히 검사 당했다.
"다음, 이기영 산사. 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대사헌."
김현성은 이기영의 도포며 소매 안의 물건들, 그리고 관복 아래의 한복 까지 들춰가며 세세히 검사를 했다. 이기영은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김현성이 검사하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다음 산사."
...
"그럼 호조의 감찰은 이것으로 마친다. 전원 신속히 업무에 복귀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사헌 수고하셨습니다."
감찰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감찰이 끝난 후에 내부 인원들이 할 때가 되긴 했지. 라는 말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에 연례행사인가 싶다. 어쩐지 지난 번 포도청에도 웬 사람이 있었더랬다.
그렇게 일을 한 다음 날, 어제 감찰로 인해 막혔던 업무를 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예조로 가야할 서류를 한 데 모아서 한 명이 다녀오기로 했는데 내가 손을 들었다. 다들 살신성인 한다며 칭찬을 하기에 바빴지만 실은 내 업무도 다 처리했고 잠시 바깥 공기가 쐬고 싶어서였다.
예조를 가니 보기 싫은 진청이 있어서 피해가려 했는데, 근처에 노란 머리에 연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색목인이 있어서 신기해서 바라보다가 진청의 야유를 받았다.
“드디어 호조에서 쫓겨나서 우리 승문원 일을 도와주는 전객사로 발령이라도 났습니까?”
“제가 왜 당신 하인이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서류 전달 차 방문한 겁니다. 진청 님.”
“매 번 호조 서류는 중요하다며 개인 적으로 전달해야한다고 우르르 몰려다닐 땐 언제고. 혼자 서류를 전달하러 오시니 발령이라도 난 줄 알았지 뭡니까.”
“왜요. 승문원 서류면 제 대신 가져다 드리려고 하십니까? 고맙지만 제가 가져갈 겁니다.”
“정말로 승문원 서류입니까??”
“아닌데요.”
“정말, 당신은.”
“누가 할 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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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은 서류를 들고 예조 안 쪽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색목인이 멀리서부터 진청에게 다가왔다.
“저. 진청 님. 멀리서 구경을 하던 차에 그... 금방 이야기 하시던 분은 누구신지.”
“앗... 라파엘 님.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이기영이라 하고요. 전객사 쪽 분과 동행하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이기영, 이기영님... 이군요. 화장실에 가고 싶다 하셔서. 제가 이 근처에 있겠다 했습니다.”
“그러시군요. 동행 분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제가 함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기영 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입니까?”
“이기영 님께 관심이 생기셨습니까? 이기영 님은 제가 있는 예조가 아닌 호조에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같은 사절은 예조 사람이 아니면 만나 뵙질 못하는 것입니까?”
“아뇨. 라파엘님이 원하신다면 교류를 못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른 분들께 요청을 드려서 다른 관할과의 교류도 가능한지 여쭈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파엘은 미소를 띠며 예조 입구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셋을 바라보던 사람 둘이 있었다.
“...”
“역시 수상쩍습니다. 대사헌.”
“관찰사님이시군요. 저도 그리 생각하기에 멀리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밀착하여 감시해둘까요?”
“아뇨. 조혜진 관찰사. 당신도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근래 들어 묘한 게 많아서 말입니다. 신규 무비사와 훈련원의 소속인 ‘박덕구’라는 자도 입궐한지 며칠이 채 되지 않았는데 포도청과 이조를 드나들던데 ‘이기영’과 관련이 있더군요. 관찰사님께는 ‘박덕구’의 감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김현성 대사헌.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고맙습니다.”
김현성은 이기영이 예문관과 성균관, 사역원으로 서류를 가져다주는 것을 사각지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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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기영님.”
“저희 쪽에서 전달 드리기로 했던 서류입니다.”
“네. 곧 작업하여 저희 쪽에서 승문원으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만. 또 이상한 시선이 느껴진다. 서류를 전부 전달하고 뒤를 돌아서다가 양 옆을 두리번거렸으나 시야에 잡히는 것은 평소와 같은 궐의 풍경 뿐이었다.
“아. 뭔가 더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아뇨. 제가 잠시 목 운동을 했던 참입니다. 하하.”
“서류 작업을 자주 하게 되는 저희나 이기영님은 그럴 수 있죠. 몸 건강하시고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분명 같은 풍경을 걷고 있음에도 기분이 나쁘다. 자주 들렀던 사역원임에도 기분이 나빠 자연스레 허벅지에 손이 갈 정도였다. 지난 번 병조에 들렸을 때처럼 누군가 지켜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진짜로 보고 있다면? 지난 번 갈색 머리의 조혜진이라는 감찰사?
일단 자세를 바로하고 호조의 본관으로 들어섰다.
“아. 산사, 오셨습니까.”
“네. 계사님, 정랑님. 다녀왔습니다.”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떨까요. 산사께서는 본인 서류를 모두 처리하셨고 저희를 도와 서류도 갖다드리는 것도 도와주셨으니 까요.”
“정랑님. 다른 분들의 일은 얼마나 됩니까? 돕겠습니다.”
“산사.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저희 업무라고 해봐야 이 정돕니다.”
평소의 본관의 책상들에 탑을 쌓던 양과는 달리 서류의 양이 한 사람 당 2권 정도로 적은 양임에도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 일 처리는 정확하지만 느리잖아. 자신보다 산학대사의 업무와 산사들의 업무를 한 개 씩 받아와 5권의 책을 받아왔다. 누구보다 많은 책을 쌓아놓자, 다른 이들이 고마워하면서 민망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냥 쉬긴 어렵겠지만 이렇게 내가 일을 많이 했다고 어필하면 그 다음엔 쉬어도 말이 안 나오겠지.
“그러면 조금만 돕고 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본인 업무도 다 처리하셨는데.”
“같이 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쉬웠다. 부친의 의술 서에 비하면 이런 산술적인 것들은 고려할 것이 보다 적었으며 답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서류에 쩔쩔매는 동안에 받아온 서류가 전부 수리되었다.
“역시 산사십니다. 다음 승진에서 산사가 오르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입니다.”
본관에서 이렇게 서류를 다 처리해본 것도 오랜만이라, 문관들은 크게 기뻐했다. 다들 산사가 계셔서 잘 처리된 것이라며 이기영에게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했다.
이기영은 평소와 달리 붕 뜬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몰랐으나 일단 본관을 나와 건물 앞의 마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기영은 몸을 좀 움직일 겸 살짝 뛰듯이 건물을 나섰는데, 문을 넘는 순간, 그의 귀에 신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슥
“...?”
이기영은 뭔가 싶어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서 돌아섰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기영이 뒤 쫓은 것과 비슷한 순간에
-슥
신의 끌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이기영은 그 너머를 또 들여다봤다.
벽을 두 번 돌아서 만난 것은 노란 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색목인이었다. 아까 승문원의 화원에 있던 사람인데 여기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법도 했으나 이기영은 그저 싱긋 웃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어찌 찾아오셨습니까? 제가 뭔가 도와드릴까요?”
“저.. 저는 그게.”
“아.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뇨. 할 수 있습니다. 그. 제 이름은.. 라파엘이에요. 제가 다른 분들 일하시는 게 너무 궁금해서요.”
“라파엘님. 저희가 막 일을 끝낸 참이라.. 본관은 서류 자체가 엄중히 금해져 있는 서류들도 많고 해서...”
“그럼 여기 외에 다른 곳을 구경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잠시... 일단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사절님이시죠?”
“네.”
“잠시 같이 와주시겠습니까?”
이기영이 라파엘의 손에 손을 받쳤다. 라파엘의 얼굴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이기영이 라파엘의 손을 잡고 끌었다. 라파엘은 이기영이 자신을 이끄는 대로 본관에 들어섰다.
“정랑님. 저 산사입니다.”
“아니, 이기영 산사. 제가 쉬라 말씀 드렸습니다.”
“그 것이 사절님께서 어쩌다보니 구경 나오셨다가 저희 호조가 궁금하시다 하여 제 책상 옆에 앉혀드려도 될까요? 전객사 분이 아마 찾으러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 어제 우리나라에 도착했다는 서역의 사절단의 분이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정랑입니다.”
“안녕하세요. 라파엘이에요.”
“우리말을 잘 하시는 군요. 천천히 둘러보다 가셔도 됩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기영 산사님, 이 분은 저희 쪽이랑 이야기가 되어있는 분이니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라파엘님과 다니시려면 2시진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오후에 라파엘님께 안내 드리시다가 그대로 퇴근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아.. 정랑님..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이기영은 인사를 마치고 본관을 나와 중앙의 마당을 향해 걸었다.
“라파엘님. 아까 예조에 계셨었지요. 성균관은 다녀오셨습니까?”
“네. 이기영님. 아까 전객사님이 성균관과 승문원, 악학도감을 안내해주셨습니다.”
“호조 측 건물은 본관이 처음이셨습니까?”
“어느 쪽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본 것은 세 곳이 다예요. 아. 여기까지 네 곳이에요.”
“그러시면 호조가 대부분 서류 업무만을 하는 곳이라 구경할 만한 곳은 전함사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서류 업무도 좋아요.. 그 붓이랑 먹의 냄새도 제가 좋아하거든요.”
“그러세요?”
호조는 누군가에게 보이기가 껄끄러운 곳이다. 안내를 한다고 하면 서류 작업이라 할지라도 국가 재정이나 숫자가 관련되지 않은 양현고가 좋을 테였다.
그리고 양현고만 보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 호조에서는 퇴근 시각까지 안내하라 했으니, 사포서는... 구경만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역시 위험했고, 전함사를 지나가며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양현고의 대문을 지나 한참을 걷는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돌아보니 라파엘이 대문 앞에 멍하니 문의 이름을 읽어보는 것이 보였다. 귀엽네. 금세 읽다말고 날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머리카락이 노란 라파엘이 달려오자 흔하지만 털이 고운 강아지가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자에게 지원을 하겠단 말이오?
"제대로 조사서를 읽어 보시오. 저 자가 낫소!"
"당신에게는 말이 아깝소!"
아니 이런 슈바. 왜 하필이면 사절들도 있는 시기에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일 해?
완전 망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조용한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조금 언성을 높이며 일하는 모습에 라파엘은 몸을 움츠리는 것이 보인다. 망했어. 여긴 그냥 나가야겠네. 라파엘의 소매를 끌어 양현고를 나서자, 라파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죄송합니다. 워낙에 격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분들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더 격해지신 것 같아요.”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선한 먹냄새가 가득한 곳이었어요.”
“저 곳은 국가에서 선별한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내리는 부서입니다. 워낙 민감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곳이에요. 기준이라는 게 정해져 있어도 사람을 기준에 맞추려면 어려운 이야기니까요."
“그러게요... 세금은 제대로 쓰여야 하니까요. 열정적인 분들이시네요.”
“먹냄새를 좋아하신다 했지만 저희 쪽에선 워낙 민감한 부분이 많다보니 보여드릴 수 있는 부서가 적어서..”
“아뇨. 괜찮아요. 오전에 성균관을 다녀오긴 했었으니까요.. 제가 죄송해요.”
사포서에는 궁에서 필요로 하는 음식을 충당하기 위해 작물들을 기르고 있었다.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는 흔하디흔한 종자이긴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문제는 없을테다. 자라고 있는 배추와 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걷는 것보다는 최대한 궁내에서 해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자주 먹는 작물입니다. 멀리서만 봐주시겠어요?”
“이 작물은 비슷한 무언가가 있긴 한데 저 작물은 처음 보는 작물이군요.”
“작물에 대해서도 민감한 부분이 있으니까 이렇게만 보고 지나갈까요?”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함사에 가는 길이니 만지지만 않으면 괜찮을 겁니다.”
웃으며 밭두렁을 넘어섰는데, 라파엘이 머뭇거리며 흙길 앞에서 발을 떼지 못 했다. 흙 길이 두려운 걸까. 라파엘에게 손을 내밀었다. 라파엘이 이 쪽으로 손을... 어?
두렁에 한 발자국 내딛는 순간에 흙이 무너져 내렸다. 기우뚱 하는 몸을 추스르려 했지만 이대로는 배추밭에 굴러버릴 것만 같다. 손 잡으라고 내밀어놓고 넘어지다니 쪽팔리네.
금세 일어나면 모른 척 해주겠지? 넘어가며 바람에 하늘이 살짝 보이던 참에 그 느릿하던 라파엘이 갑자기 쏜살같이 달려와 손을 잡으며 넘어지는 내 몸을 받쳐주었다. 뒤로 넘어가던 몸은 그대로 라파엘이 끌어당기자 안정을 되찾았다. 보기에 라파엘은 어리고 작은 몸집이었는데 기대고 보니 생각보다 가슴이 탄탄했다. 의외로 문관이 아니라 무관이었나 싶은 몸이었다.
라파엘은 내 몸을 꼭 끌어안더니 갑자기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곤 바로 팔을 제외하고 몸을 떼어내며 말했다.
“괜. 괜찮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넘어지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상냥한 라파엘은 나를 보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발그레한 볼로 활짝 웃는 모습은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라파엘은 내가 또 넘어질 것이라 생각을 했는지, 소매를 잡았던 손을 놓지 못한 채 이쪽을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그대로 가다간 소매가 늘어날 것 같아 소매를 잡았던 손을 떼어내자 라파엘은 조금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곧 손을 직접 잡아주자 뿌듯한 건지 좋은 건지 모를 표정으로 신나서 따라왔다.
사실 이렇게 소매나 손을 잡고 가는 것은 사신의 품위를 해치는 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라파엘은 교육받고 왔을 텐데도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벌써 전함사가 보이네요. 배를 만들진 않지만 연구하고, 관리하는 곳이랍니다.”
“관청이라 그런지 역시 먹 향기가 나요. 좋아요.”
“아. 안녕하세요. 관람이십니까?”
“안녕하세요. 네. 조금 보다가 갈게요.”
“편히 있다가 가세요.”
전함사의 입구에는 소형 모형이 전시되어있었기에 라파엘은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았다. 뭘 들여다보는 거지? 함선들 중에서도 서역에 없는 모양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밑의 설명을 고심하여 읽으려는 것 같았지만 물어보기 전까진 도와주지 않아야지. 그래야 좀 적게 보고 시간도 때우지.
라파엘은 설명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다가 내가 근처에서 같이 구경하는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놀라셨나 봐요. 사절님.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아녜요. 이기영 산사님... 저는 산사님이 곁에 계셔 주시는 것이 더 좋아요."
안 쪽의 일 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 쪽에 신경을 못쓰는 것 같아서 잠깐 다가갔더니 관리 한 명이 다가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산사. 그리고.. 사절 이신거구요."
"조금만 둘러보다 가겠습니다."
"네. 모형만 보고 서적을 읽지 않으신다면야. 괜찮을 듯합니다."
관리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건물 밖의 시계를 슬쩍 보고는 싱긋 웃으며 라파엘을 기다렸다.
“다 보시면 말씀 해주세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려워서...”
내가 설명을 할 때마다 라파엘은 소형 모형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안내해달라는 것이 다른 사절과 달리 그저 의미 없는 부탁이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한 척 한 척 설명해갈 때 마다, 라파엘은 황홀하다는 듯이 웃으며 얼굴을 끄덕였다. 라파엘은 소형 모형선의 반이나 설명을 부탁했다. 너희 나라에서 들여온 배이고 너희 옆의 나라 서역에서 들여온 배이고 하는 것까지 설명을 해야 하는 터여서 정말로 수상했다. 바깥의 시계를 보니 시간도 꽤나 지나서 돌아가면 딱 맞을 것 같다.
"이제 돌아갈까요?"
“정말 즐거웠어요.. 조선의 배가 참 흥미로웠어요. 이기영님이 설명해주신 것도 너무 좋았어요.”
“그러셨어요. 어떤 배가 제일 좋으셨습니까?”
“워낙 우리 쪽은 돛이 화려한 배가 많아서.. 돛이 없는 배가 좋았어요.”
“아. 거북선이요?”
“네. 귀엽더라고요.”
“그거 귀엽긴 하지만 대단한 배랍니다. 설명 기억하시죠?”
“네. 전적이 엄청난 배였죠. 기영님 다리는 안 아프세요? 제가 너무 여기저기를 보고싶다 해서 이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괜찮아요. 하지만 슬슬 승문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해가 질 것 같으니 슬슬 돌아갈까요?”
“네. 기영님.”
라파엘은 웃으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왔다. 뭔가 싶지만 내가 아까 넘어져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서역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동양과 달리 쉽게 이루어진다 들었던 것이 있어서 그대로 전함사를 나섰다.
“기영님은.. 어느 쪽에서 출퇴근 하시...?”
그 때였다. 아무 소리도 없었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금방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봤을 때는 아무도 없던 자리였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우뚝 한 남자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