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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亂謐月奇談 w.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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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밀월기담

 

야성(野聲)이 요란한 밤이었다. 짐승과 요괴의 소리가 뒤섞이어 사람들은 귀를 막고 잠을 청했고, 산 가까이 사는 이들은 부디 오늘 밤 목숨을 보존할 수 있기를 빌었다. 이러한 밤이 몇 날이고 몇 달이고 지속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난이 일었다. 터에서 쫓겨난 요괴들은 남자나 아녀자를 가리지 않고 패악질을 일삼았고, 그렇게 폐쇄된 마을이 수십 군데는 되었다. 도성에서는 요괴 토벌을 위하여 군사들 수천을 보내었으나 그들은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오체분시된 시체로 도성 앞에 몸을 누였다.

요괴가 같은 요괴를 잡아먹는다고 하였다. 누군가는 요괴처럼 생긴 인간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모두 ‘요괴 아이’가 나타나고 벌어진 일들이었다. 요괴 수백 마리가 들끓던 마을이 하룻밤 새에 폐허가 되어 요괴들이 얼씬도 않게 된 일이 있었다. 이 역시 요괴 아이가 벌인 일이었다. 요괴의 아이는 악인인가, 선인인가? 뭍 사람들의 열띤 토론은 주막이며 책방이며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각축을 벌이던 이들의 언어는, 무엇이 되었던 간에 요괴 아이는 사라져야 한다는 말로 귀결되었다. 흉흉한 민심이 금방이라도 넘칠 듯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렇게 민초들의 인내심이 한계를 맞이하였을 때 즈음, 한 고을의 영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기영, 그 자를 데려와라.”

지독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제가 천도 시켜 드렸으니까요. 생이란 본디 한데 모였다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 머나먼 내세에서 분명 만나 뵐 수 있을 테지요.”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법사님….”

오늘 의뢰는 간단한 편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덤을 파헤치고 나와 마을을 돌아다닌다, 부디 아버지가 천도를 할 수 있게 도와 달라. 세상이 흉흉한 탓인지 요기가 날뛰어 요사이 그런 일들이 꽤 되었다. 딱히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고 생전 모습을 답사할 뿐인 시체였지만, 썩어가 구더기가 들끓는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보기 안 좋은 광경이기는 하였다. 이런 이들을 잠재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반항하지 못하게 팔 다리를 부러뜨리고, 육체에 묶여 있는 영혼을 날려 보낸다. 말이 천도지 나 같은 반푼이 법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의 소멸이나 다름없는 방법이다.

천도는 개뿔, 여태 구천에 남아 죄 없는 생명을 괴롭혀 온 영혼이 그런 마음 편한 곳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미륵의 눈에도 닿지 않을 지옥 밑바닥에서 고생 하느니 차라리 소멸이 나을 듯 하여 그리 해주었을 뿐이다. 당신 부친의 영혼은 이제 다시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아버지, 제가 내세에서는 꼭 아버지의 부모로 태어나, 못 다한 효도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양반은 내세고 뭐고 없대도. 나야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그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해 보였다. 뭐니뭐니 해도 이런 사업은 겉보기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요괴가 된 아비가 다시는 나타나지만 않으면 그 영은 소멸되든 영원히 지옥에서 떠돌든 내 알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례로 두둑해진 허릿춤에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절로 인심 좋은 미소가 비어져 나왔다. 누가 봐도 자애롭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생불의 미소였다.

 

“법사 이기영은 들으라!”

훈훈하게 마무리 되려던 일에 초를 친 것들은 무장한 일련의 무리들이었다. 붉은 관복으로 무장한 것을 보니 관아에서 나온 이들인 듯 했다. 담담한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저지른 일들이 많아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이 마을 군사들은 아닌 듯 한데 누구지? 내가 책 잡힐 일을 한 적이 있었던가? 박덕구를 시켜 난장을 놓고 도망할까 싶다가 주위에 눈이 많아 그만두었다. 법사 이기영은 살아오면서 한번도 남의 이목에 거슬릴 일 한번 한 적 없는 무고한 위인이 아닌가. 꿀릴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이거다. 파르르, 떨리는 입 꼬리를 당겨 웃으며 군 앞에 섰다. 기특한 두 다리는 주인의 의지에 장단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풀리지 않고 잘 버텨주는 중이었다. 게다가 내 옆에는 산만한 덩치의 박덕구와 든든한 정하얀이 관군들을 경계하며 서 있었고. 이들에게 힘을 얻은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로 이리 몰려 오셨습니까?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한데 민초들이 동요할까 저어 됩니다.”

“그대가 요괴를 다루는 것을 생업으로 한다는 이기영인가?”

“조금 다릅니다만 제 이름이 이기영은 맞습니다.”

이내 저들끼리 무언가를 조용히 모의하더니 크게 호령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당장 홍사성紅使城에 방문하여 성주님을 만나 주어야 하겠소.”

“형님, 홍사성이면 그 붉은 여자가 있는 곳 아니오?”

“오, 오빠…”

불안한 듯 말하는 박덕구와 입술을 깨물며 도포 자락을 잡아오는 정하얀과 다르게 나는 입 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상태였다. 홍사성은 내 앞마당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으니까.

‘이래서 사람은 뒷배가 있고 봐야 해.’

홍사성은 차희라가 성주로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누나.”

한 고을의 성주에게 누나라니, 부관들이 들으면 경을 칠 일이지만 나에게는 허락된 일이다. 누구도 아닌 홍사성 성주 차희라의 정부인 이기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으니까. 실제로 차희라는 입가에 웃음을 띄며 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맹수 같은 얼굴에 서린 웃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부분을 움직이게 하는 데가 있었다. 차희라를 모르는 상태 였다면 두려움을 느꼈겠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런 모습이 관능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코빼기도 안 비춰?”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애들한테 들어 알고는 있었지. 그런데 그게 근 몇 달간 얼굴도 못 볼 만큼 큰 일이었나 싶어서.”

평온한 말들 사이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차희라인만큼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는 필수였다.

“요사이 전국에서 탁기가 심해졌거든. 나라고 우리 희라 누나를 안보고 싶었겠어?”

은근히 말하며 손 위를 잡아오자 휘어지는 입 꼬리가 선연했다. 차희라가 이 쪽을 위해 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야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겨우 입 조금 놀리고, 신체적인 접촉 조금 하는 것으로 이 정도의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마다 하는 것이 바보 같은 일임에는 틀림 없었다.

“이번 일은 원래 내 소관이 아닌데…. 빼돌린 거지, 중간에서. 자기, 아무래도 그 쪽 인간들하고는 조금 불편한 관계잖아?”

“그 쪽 인간들이라면.”

“이설호 무리 말이야. 그 쪽 고을로 좌천된 모양이더라고.”

이설호가 나를 불렀다고? 확실히 그 너구리 같은 늙은이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권력에는 굽히고 들어가는 이 쪽이지만 그런 비굴함조차 용납할 수 없는 썩은 무리들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새삼스럽게 차희라가 능력 있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 정부가 다 뭐냐. 희라야, 혼인 가자. 백년가약 가즈아! 이 쪽의 기분이 좋은 것을 눈치 챘는지 차희라가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미안한데, 자기. 이건 도성과 관련된 일이라 내가 어떻게 빼돌려 줄 수가 없네.”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뭐야?”

이윽고 차희라가 내뱉은 말은 관아에 제출하려던 혼인 신고를 철회할 정도의 발언이었다.

“요괴 아이를 처리해 줘야겠어.”

 

 

농담이지? 떨리는 내 목소리에도 차희라는 똑 같은 태도를 고수했다. 요괴 아이 김현성.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전국에 존재는 할까? 누구나 김현성의 이름을 입에 올렸으며, 누구도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아 했다. 인간의 몸으로 요괴 사이에서 나고 자라며 수많은 도륙을 일삼은 이. 짧지 않은 시간 윗대가리들의 속을 썩인 그를 처리하라는 말은 도성 측에서 아예 손을 놨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수천의 병사로도 해결하지 못한 일을 어찌 한낱 법사에게 맡긴다는 말인지. 대책 없이 김현성이 목격 되었다는 숲 근처로 오긴 하였으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차라리 이설호, 그 늙은이의 부탁이었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 못들은 척 무시 했어도 별 상관이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반푼이 법사라도 오랜 기간 대륙을 돌아다니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생계와 연관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아이를 거둔 요괴들에 관한 것은 법력이 있다 하는 자들 사이에서의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 없었다. 요괴 답지 않은 행동이었으나 아마 저들 나름대로의 연유가 있겠거니 짐작만 해 볼 뿐인 일들이 있었다.

요괴는 본디 선한 이와 악한 이로 나눌 수 없는 것들이다. 애초에 그런 이분법으로 나눠지는 존재들도 아니거니와 인간의 기준을 그들에게 적용 시키기엔 퍽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들을 나누자면, 김현성을 거둬들인 이들은 선한 편에 속하는 족속들이었다. 김현성이 여지껏 살아있는 것이 그 산 증거가 아닌가? 악한 요괴였다면 진즉 잡아 먹히고도 남았겠지. 지능 있는 요괴들이 어린 아이를 납치해 키워서 먹는다는 것은 근거 낭낭한 소문 중에 하나였으니까.

김현성을 거둔 이들은 식인을 하는 요괴는 아니었고, 선한 요괴 중에서도 매우 강한 편에 속했다. 신선과 반열을 같이 해도 될 정도로 강하지만 욕심이 없어 그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해도 무방할 정도.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힘이 있는데 왜 권력을 취하지 않지? 힘이 있는 자는 그에 걸맞는 자리를 취하는 것이 정당한 이치였다. 그 권리를 누리지 않는 것은 겸손 같은 미덕이 아니라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태만이다. 온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고, 따지고 보면 그들의 무위적인 태도 때문에 대륙은 지금에 이른 것이나 다름 없었다. 넘쳐나는 요기들을 취할 자들이 없으니 온갖 잡귀들이 집어 삼키는 중이었다. 하급 요괴들은 덕분에 오만방자하게 날뛰는 중이었고. 여러모로 골치 아픈 사안이었다.

‘요괴 아이’가 나타나서 세상의 요기가 강해진 것이 아니다. 인과관계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지. 그 치들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악한 요괴들이 우후죽순으로 날뛰었을 뿐이다. 요괴의 본능과도 직결된 문제다. 무슨 말인고 하니, 힘의 균형에 관한 것이다. 요괴란 족속들은 오로지 싸우기 위해 살아가는데, 약한 요괴일수록 이러한 본성은 더욱 강해진다. 이 나라의 터주나 다름없던 요괴들이 약해지자 대륙 전체가 혼란해진 것 이다.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생리라면 나보다는 더 전문가가 있었다.

 

“하얀아. 뭔가 알아낸 거 없어?”

“오, 오빠. 그게…, 오빠 생각이 맞아요. 이, 이 요괴들은 요기를 취하지 못해서 근본을 잃어 버리고 있어요. 바, 바보 같이! 오빠가 힘들어 하잖아.”

“근본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네, 네! 조금 설명하기 난해 하지만…. 모, 모든 요괴에게는 근본이 있어요. 덕구 오빠는 오랜 물건에 상념이 깃들어 생긴 거고, 저, 저도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 요괴들은…. 근, 근본을. 말하자면 삶의 이유를 잃은 거예요. 더 이상 삶을 존속할 수 없고, 그, 그렇게 해서도 안돼요. 그냥…. 이렇게 사라지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럼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데. 이대로 요괴들한테 망하라는 뜻이야?”

“아뇨. 전국이 혼란한 건 자, 잠시 뿐이에요. 헤헤. 요괴들에겐 나름대로의… 버, 법칙 같은 게 있어서, 균형이 무너져도 금방 제자리를 메워가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 자리를 찾아가는 과, 과정이에요.”

 

정하얀의 말에 따르면 대략적인 추측은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약해져 가는 요괴들을 구할 방법은 아무데도 없단다. 새삼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 요괴 아이에게 이 사실을 설명해주고 고을의 관아에 신병을 인도하면 될 일이었다. 자, 그럼 설득을 어떻게 한다. 근처의 커다란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옆에선 정하얀이 히죽 하고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고 날이 저문 탓인지 박덕구도 도깨비로 돌아와 커다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는 중이었다.

…이 둘로 요괴의 아이를 잡을 수 있을까? 계산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정하얀은 강한 요괴이긴 했으나 전투에 특화된 것은 아니었고, 박덕구는 덩치만 큰 새끼 도깨비에 불과했다. 사람을 상대로라면 몰라도 요괴가 상대라면 턱도 없다. 게다가 상대는 정예 군사 몇 천을 괴멸시킨 전적이 있는 자. 무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은 내가 나설 수 밖에 없다는 뜻인데... 말은 통하겠지? 웬만큼 지성이 있는 요괴집단이니 거둬들인 인간의 아이에게도 글을 가르쳤을 공산이 컸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결심을 마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올망졸망한 시선이 나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귀여운 놈들.

 

“덕구야, 마을에서 먹과 붓을 빌려와라. 하얀이 너는 종이를 좀 구해오고.”

“글이라도 쓰려고 그러오, 형님? 과거 합격 한번 한 뒤로 그 쪽은 영 놓은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 알겠어요 오빠.”

“네 형님이 그릇된 일 하는 것 보았냐? 다 쓸데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돼지 새끼야. 하얀이도 고맙고.”

하여간에 비루먹은 옛 이야기까지 꺼내기는. 한 때 종묘사직에 종사하였던 몸이지만 이미 지금과는 연이 닿지 않을 정도로 먼 일이다. 그 때의 모습을 정하얀이 참 좋아했던 것 같기는 한데, 천성과 어울리지도 않는 일을 계속 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라. 정치질에는 재간이 있었으나 그런 자리를 고집할 만큼 신경줄이 질겼던 것도 아니라 크게 일을 쳐 놓고 그 뒤로는 발도 들이지 않은 참이었다. 그래도 그 때 이용해 먹었던 글 솜씨가 어디 간 것은 아니라서, 종이 위로 드러나는 글자는 자태가 퍽 고와 보였다. 훔쳐온 문방사우(文房四友)이건만 그 값은 톡톡히 해 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 장기는 영멸과 파괴다. 천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약해 빠진 능력이라도 10여년을 써오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분야의 최고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보통 이상은 해 낸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아무리 요기가 강대하다지만 근본을 잃어 약해지는 요괴 무리들을 영멸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품 속에 힘들게 적은 서신을 가지고, 이곳저곳 널부러진 요괴들을 소멸 시키며 나아가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고 싱거운 일이었다. 본신의 체력이 미약한 탓에 이 짓도 금방 힘에 부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산 초입에서 기운이란 기운은 몽땅 쏟아 부었더랬다. 절대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매달리는 정하얀과 박덕구를 떨쳐 내는데에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잠시 일이 있어 고을에 다녀온다고 말할 것을 그랬다. 딴에는 걱정을 해준 것 일텐데 매몰차게 내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마을에서는 메밀 묵이나 예쁜 비단이라도 선물해 주어야 겠다. 지금 와서 그들이 생각나는 것은 어두운 숲이 두려운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빌어먹을, 무슨 숲이 이렇게 어두워? 가쁜 숨을 진정 시키며 손 끝의 영 찌꺼기를 털고 있는데 눈 앞에 빠르게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 절로 움츠러들게 되는 것은 본능이었으리라. 이 앞으로 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그런 직감. 종잇장 같이 가냘픈 몸이라도 수많은 위험을 헤쳐 나오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감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 왔지.’

사내대장부로서 참 못할 일이다 싶긴 하였지만 본래 장족을 내딛기 위해서는 한발자국 물러설 줄 도 알아야 한다. 품 속의 종이를 쥐는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온다. 글자가 번지지 않아야 할 텐데. 어두운 야산 한가운데서 눈 한 쌍만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부스럭, 하는 소리가 풀벌레 소리에 얽혀 큰 소음마냥 다가왔다. 이내 펼쳐 보인 종이에는 그 큰 여백이 무색 하듯 ‘항복’이라는 두 글자만이 크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

‘뭐라고 말 좀 해봐. 나 죽일거야?’

“...”

‘잔망스럽게 글까지 써 왔는데 죽일 거냐고.’

 

계속되는 대치 상태에 이윽고 하나의 가설이 떠올랐다. 뭐야 이거. 글자를 모르나? 한참을 야산을 올랐더니 어느새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앞의 인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커다란 덩치는 아닌 것 같은 요괴. 아니, 인간의 모습. 숯검댕인지 뭔지로 얼굴을 까맣게 물들이고 이쪽을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꼭 천치 같았다. 정정해서 좀 잘생긴 천치 같았다. 채 자라지 못한 듯 어린 태가 나는 것이 대강 약관(弱冠)이 조금 더 되었겠다 싶은 인상이었다. 이 쪽과는 영을 대하는 데에 연륜이 다르다 이거다. 품에 자신과 덩치가 비슷한 요괴를 끌어안고 우는 모양이 애처롭게 느껴질 법도 한데 속으론 헛웃음만이 나왔다. 글월이 적힌 서신을 내려 두곤 잠시 생각을 거듭해야 했다. 글이 안 통하면 말은 통하나. 둘 다 통하지 않는다면 일이 곤란하게 되겠는데.

“그리 세게 끌어안고 계시면 영이 편히 떠나지 못할 겁니다.”

“…”

“떠나지 못하고 몸에 매여 있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습니다. 그런 영들은 대부분 악귀가 되고 맙니다.”

곧바로 이 쪽을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끼어든 것이 적절한 시기였던 모양이다. 눈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면 말 정도는 알아듣는 것 같고. 품에 안고 있는 것은 분명 소중한 이가 틀림 없겠지. 그것이 이미 죽은 송장이든 곧 죽을 반송장이든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였다. 청년이라기엔 덜 자란 남자의 입이 말문을 텄다.

 

“살려 주세요.”

“...”

“제발, 살려 주세요…”

“저는 영의 천도를 돕는 인간이지 의술을 배운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요괴들의 몸 역시 인간과는 달라 의술을 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요괴가 아닙니다!”

소리를 높이곤 저 스스로 놀라 입을 다무는 것이 어린 짐승이 따로 없었다. 발개진 눈가로 죄송합니다, 도와 주세요. 외치는 꼴이 오래간 고생해 정신이 없는 와중인 듯 싶었다. 지성이 있는 요괴 중에는 스스로 요괴라 불리기를 꺼리는 무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들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내 앞의 남자를 철저히 요괴처럼 대할 생각이었다. 겉가죽이 인간이라고 해도 요괴 속에서 자란 인간이 온전한 인간 일리가 없었으므로. 짐승이나 요괴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도권을 잡는 일이었다. 주도권을 뺏긴 것만으로도 그들은 공격할 때를 놓치고 혼란을 내비친다.

“법사 이기영입니다. 요괴, 아니. 순수한 영들의 천도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내 장기가 영멸과 파괴라고 설명 했던가?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다. 법사 이기영의 주 특기는 입 털기였다. 나랏님마저 속여 넘기는 말재간 하나로 순진한 요괴 하나 털어먹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리라. 간절한 얼굴로 이 쪽을 보는 김현성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주듯이 말하자 빠르게 경계심이 무너지는 표정이 보였다. 하여간에 감언이설에 약한 것은 인간이나 요괴나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이후 작업은 수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김현성이 안내한 곳은 계곡 깊은 곳에 있는 요기의 본거지였다. 짙은 요기에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으니 웬만한 요괴나 인간이었더라면 주화입마에 빠졌을 것이 분명했다. 박덕구와 정하얀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었다 싶으면서도 산맥 곳곳을 탁하게 만드는 이들을 기가 찬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폐가의 지주(蜘蛛) 새끼들을 털어내듯 간단한 일이 될 것이었으나 이 상황은 분명히 이용해 먹을 수 있었다. 그 ‘요괴 아이’ 김현성이 이 쪽의 수중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알싸한 쾌감을 불러 일으켰으니까. 나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이건… 언제부터 이리 된 겁니까?”

“여드레 달 전부터 그리하였을 겁니다.”

대강 전국에서 요괴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를 기점으로 하였던가. 이리저리 짐짝처럼 널려 있는 요괴들은 시체의 냄새를 풍기며 그 명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인간이 보기에도 상태가 퍽 심각하게 느껴질 진대, 그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온 김현성은 작금의 사태가 얼마나 중한지 알고 있을 것이 훤했다. 손도 못 쓰고 보고 있다가 거주지에 쳐들어오는 요괴들을 상대한 것이겠지. 도움을 청하러 간 마을에서는 요괴의 아이라 하여 문전박대를 당하였을 것이고. 보지 않았어도 당시의 상황이 눈 앞에 그려졌다. 낯선 이인 나를 이 곳에 들이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었으니까.

 

“말씀 드렸지만, 저라고 이들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분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할 겁니다. 이렇게 고통 받으실 바에는…”

“방도가…, 다른 방도가 없겠습니까?”

“천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본신의 힘이 미약하여 제 수명을 다 바친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다른 방도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행할 이유도 없었다.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자 고개를 푹 떨구는 김현성의 모습은 언뜻 보면 처연해 보일 정도였다. 얼굴 때문에 그리 보이는 건가? 잘난 얼굴이란 고금을 막론하고 개연성을 얻는 법이었으니까. 이 얼굴을 보고도 괴물이니 뭐니 지껄인 놈들은 죄다 눈이 삐었거나 공포심에 헛것을 본 것이 틀림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내가 그에게 동정심을 가질 지경이었으니 더 말하면 입만 아파올 얼굴이다.

“염치 없는 부탁인 것을 알지만, 법사님. 부디 천도를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가족과 다름 없는 이들입니다. 오랫동안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 보아야 했습니다. 더 이상은 고통 받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 그러면.”

겨우 목소리를 떨며 내뱉는 말에는 내 가슴이 다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래, 거둬진 아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집만 세워 죽지도 못하고 사는 요괴들이 문제지. 수명이 다 했으면 얌전히 뒈질 것이지 꾸역꾸역 살아남아 이리 세상을 혼란하게 만드나. 높은 곳에 있는 작자들은 인간이며 요괴며를 가리지 않고 고여서 죄다 썩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소멸해 가는 몸뚱이를 가진 요괴들은 염을 몇 줄 읊지도 않았는데 화하여 빛무리가 되었다. 언제 보아도 영멸 되는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스러워 보이는 모양새였다. 뒤에서 가만히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현성은 할 말이 있는 듯이 입을 달싹대다가 멈추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본성이 요괴인지라 이런 모습을 보고 달려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요괴들은 자신들이 영멸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건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흐려진 초점이 흡사 시체라도 보는 듯했다. 그러니 갑작스레 이 쪽의 팔목을 잡아오는 것에 놀랄 수 밖에. 생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너무 방심 했나, 싶어 아연해지던 찰나에 요괴는 단 한 문장 만을 속삭이고 그 몸에 힘을 풀었다. 산란되는 빛처럼 흩어지는 그것을 바라보자니 기분이 이상해 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겨우 미물에 불과한 것들이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흉내를 내는 꼴이 역겹기 그지 없었다. 사람 새끼를 주워 길렀다고 진짜 사람이라도 되었다고 착각하는 건가? 불행 중 다행으로 김현성은 이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며 이 쪽을 보고 있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놓인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애시당초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었는데 마음이 쓰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요괴 아이’는 앞으로도 쓸모가 많을 터였고. 김현성은 이 쪽이 잘 써 먹어 줄 테니 이 요괴들이야 걱정 말고 사라지면 될 일이었다.

 

 

“기영 씨. 제 가족은, 가족들은 모두 괜찮아 진 겁니까?”

아, 걔들. 다 영멸 시켰는데. 작업을 마치고 숨을 고르는데 뒤에 멀거니 서 있던 김현성이 말을 걸었다. 어느새 이 쪽을 기영 씨, 하며 높여 부르고 있는 모습. 눈 앞에서 제 가족이 빛무리로 화하여 사라지는 것을 보았으니 이런 대우를 받을 법도 하지. 제 아무리 나라도 조금의 온정 쯤은 있는 법이다. 이렇게 순박한 눈망울로 물어오는데 ‘당신의 가족들은 사실 간악한 악귀 집단이었고, 그것들을 모두 천도 시키려면 법사 하나만의 희생으로는 불가능 하기에 영멸 시켰다’ 하는 말을 차마 내 입으로 말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짐짓 애달픈 표정을 지어 보이곤 김현성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따스한 온기가 아직 어색한 듯 몸을 떨었으나, 표정만은 간절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요괴 아이는 무슨, 이렇게 정 많은 놈한테. 속으로 비웃음을 내비쳤던 것도 잠시. ‘나는 최선을 다 했다, 모두 내 희생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하는 내용을 내비치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들은 모두 석가의 보살핌 아래, 내세에 고귀한 영으로 다시 세상에 날 것입니다. 예, 틀림 없이요.”

“기영 씨.”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흐느끼며 쓰러지는 모습에는 약간 양심 언저리가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뭐, 따지고 보면 김현성의 가족들에게도 지옥이나 구천에서 떠돌기보다는 영멸이 나았을 것이다. 악귀를 구제하여 주는 여래라도 된 듯한 심정으로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캬, 이거지! 앞으로 이 유용한 몸을 어떻게 써 먹을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온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요괴 아이를 부리는 이기영! 인간들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들 역시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이러다 신선 반열에도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너 때문에 희생하였지만 괜찮다, 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김현성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임마. 우리 갈 길이 삼만리야. 이기영의 행복 호의호식 인생길!

 

“비록 저는 다음 생도 불투명한 몸이 되어버렸지만, 이런 몸임에도 여전히 저의 소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하늘이 제게 주신 일이니까요.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몸이지만 할 일을 모두 끝낸다면 편안하게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겠습니까? 아니, 제발 돕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럼 고럼, 이런 대답이 나와야지. 쾌재의 웃음이 비죽비죽 튀어나오려는 것을 애써 짓누르고 ‘그렇다면…’ 하고 운을 떼었다. 일부러 ‘이런 몸’ 임을 강조해서 자근자근 김현성의 양심을 짓밟아 준 보람이 있었다. 사람 수백과 요괴 수천을 죽였더라도 어린 애는 어린 애다. 양심을 저버리는 일은 할 수 없고, 제 가족을 버린다는 일은 생각조차 못할 것이 분명. 살짝 도포를 들어 이기영의 하얀 배때지의, 아니. 배꼽부터 아래로 나 있는 주박 자국을 보여주었다. 검은 색 문자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엉켜 기묘한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배까지 까보이는 데,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천치라도 알겠지? 아니나 다를까 힐긋 본 김현성의 얼굴이 대번에 어두워 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렇게 계속 죄책감을 가지면 되는 거다.

“이 주박 자국은 현성 씨의 가족들을 천도하며 생긴 것입니다. 아마 평생을 제 몸에 남아, 점차 저의 몸을 잠식해 나가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에 김현성이 가족이라 부르는 간악한 악귀 무리들을 영멸하며 조금 커졌으니까. 한 치(약 3cm) 정도?

“만약 저 혼자 다닌다면 이 주박이 언제 제 몸을 집어 삼킬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성 씨가 곁에 있어 주신다면 다릅니다. 현성 씨는 인간이지만 거의 20년간을 그분들 곁에서 보내지 않았습니까? 완전히 요괴가 되지는 못했더라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힘들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성 씨가 굳이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요. 어쩌면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제 욕심에서 비롯된 부탁이 될 수도 있겠군요.”

표정과 말씨는 때로 단어보다 많은 것을 내포한다. 자조적인 웃음을 띄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서글픈 눈에는 어쩐지 눈물이 서려 있는 것도 같다. 온갖 고통과 번뇌,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가감없이 보이는 이 표정. 어쩌면 김현성은 욕심 없이 내 한 몸을 희생하겠다는 이 모습에서 가족들의 인영을 비추어 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떡밥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입질이 오는 법이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제가 비록 인간이 아닌 자들의 품에서 자랐을지언정 사람 된 자로서의 도리도 모르는 자는 아닙니다. 기영 씨는 저의 가족을 구해 주신 은인이십니다. 그러니 저의 남은 삶을 바꿔서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월척이로세. 마음 같아서야 배에 올라 감사제라도 드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지금 내 표정은 한없이 죄책감에 차 있을 것이었다.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은 제 쪽에서 드리고 싶습니다.”

“정 그렇다면. 주박 위에 손을 올려 주세요, 현성 씨.”

“…이렇게 말입니까?”

김현성은 주저 하는 듯 하다가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밤공기에 노출되어 살짝 차가워진 배에 닿는 손이 뜨겁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읏,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 참, 유혹하는 요부도 아니고. 스스로가 기가 차 고개를 드니 우습게도 눈 앞에는 붉어진 김현성의 얼굴이 보였다. 진짜? 이런 걸로 얼굴을 붉힌다고?

“네. 그리고… 현성 씨의 기를 이 쪽으로 흘려 보내 주시면 됩니다. 자연스럽게요. 텅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운다는 느낌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김현성이 난처한 얼굴로 손을 움직였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표정. 당연한 일이었다. 기를 다룬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요괴 틈바구니에서 자란 인간이 노력 좀 한다고 가능할 리가. 난처한 얼굴로 손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던 김현성의 낯빛이 어두워 졌다.

‘현성아, 더듬지는 말고.’

“죄송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차차 익숙해 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아래서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순간의 일이었다. 뱃속이 뒤엉키는 기분에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렀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말도 안돼. 기를 불어 넣으면 된다고 말 한지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꾸역꾸역 아래를 열고 들어오는 김현성의 것에는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김현성도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내 이름을 불러 왔다. 지나친 고통에 먼 곳의 메아리 마냥 느껴졌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기영 씨?”

“흐읏.., 현성.”

자칫하다가 내혈이 온통 뒤틀려 주화입마에 빠지게 생겼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아챈 모양인지 김현성이 쓰러지려는 이 쪽을 받쳐 들었다. 모든 것이 다 빌어먹을 주박의 탓이었다. 주박만 아니었어도 몸이 음기를 띄고 있을 일은 없었을 것이고, 양기 좀 받아 들였다고 이리 뒤틀릴 일 또한 없을 것 아닌가. 사내의 몸으로 음기를 띄는 일도 정상이 아닌데 이러다가는 김현성을 거두기는커녕 아랫배부터 맞추게 될 지경이었다. 차라리 며칠간 푹 잠들어 있는 것이 낫겠다 싶어 정신을 놓았다. 깨어나고 나면 뭐든 간에 정리가 되어 있겠지.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김현성이 이 쪽의 이름을 애달프게 부르는 것이 들려 왔다. 나 안죽어, 새끼야…. 시끄러우니까 일어나서 이야기 하고.

 

 

산의 입구에는 거대한 덩치의 도깨비와 어둑시니 하나가 이기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현성의 품에 안겨 있는 이기영을 보곤 울며불며 공격해 오는 것을 진땀 흘려가며 막아야 했다. 척 보기에도 이기영의 상태가 이상했던지라 계속해서 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럽게 이 이기영이라는 남자가 했던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되면서 마음 한 구석이 복잡해졌다. 자신 하나만을 위해 일생을 이런 위협에 내던진 것이 아닌가. 처음 보는 인간의 무엇을 믿고 이렇게까지 행동한 것인지 생각해 보는 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간인 주제에 요괴들과 함께 다닌다니. 자신은 특수한 경우이니 제외한다 치더라도, 김현성은 자라오며 한번도 인간이 요괴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 요괴들은 그의 편을 들고 있지 않은가. 성을 내다 지쳐 잠든 정하얀이라는 요괴를 뒤로 하고, 박덕구가 나지막히 말을 텄다.

 

“형님을 건드리면 가만 있지 않을거요.”

“사랑 받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지. 그 약한 몸으로 우리를 지키겠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데, 내 아무리 천륜을 모르는 요괴라도 정을 줄 수 밖에 없지 않겠소.”

박덕구는 알고 있었다. 기가 너무 흉흉해 마치 요마(妖魔)처럼 느껴지는 이 인간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이고 누님이고, 이기영의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만 있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만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신부터가 요괴이기에 다른 요괴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박덕구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라지만 요괴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이 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란 본디 악한 자들이니 어쩌면 요괴들의 영향 탓에 더 악해졌을 지도 모른다.

박덕구는 그래서 이번만은 이기영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평소라면 이기영이 물잔으로 산을 옮긴 대도 ‘역시 형님이오!’ 하고 믿어 주었겠으나 이것은 안전이 직결된 문제여서 더욱 그러하였다. 형님은 이 자의 뭘 믿고 곁에 두는 거지? 다룰 수 없는 무기는 욕심내지 않고 처분하는 것이 옳았다. 김현성은 제어할 수 있는 종류의 생물이 아니었고, 손에 넣기 보다는 처분하는 것이 더 올바른 일일 터인데, 자신의 형님은 무슨 생각인지.

 

“기영 씨를 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김현성이 무엇이 궁금 하냐고 물어왔다. 궁금한 것? 김현성의 연고지, 출생, 자라온 배경, 어찌하여 그리 수많은 요괴를 죽이고 다녔는지, 요괴를 죽였음에도 인간까지 해한 이유는 무엇인지. 왜 우리 형님을 따라온 것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남자였다. 한 없이 싸늘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 보다가도 형님을 볼 때의 눈빛은 주인의 온정을 바라는 충견 같았다. 개의 충심이야 워낙에 유명한 것이었지만 박덕구는 원래도 짐승을 믿는 편이 아니었다. 제 배가 주리면 언제든 주인을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이 짐승이었고, 감정을 알지 못하기에 한 없이 잔인해지는 것 역시 짐승이었다. 인간이라기엔 짐승에 더 가까울 이 남자를 박덕구는 믿을 수 없었다.

“왜… 우리 형님을 따라다니는 거요?”

“…제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기영 씨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

“예, 기영 씨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요.”

실로 간결한 대답이다. 원하는 것의 유일한 제공처가 자신의 형님이라면 따라다닐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자가 자신의 형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고? 박덕구의 형님은 안그래도 요괴 퇴치며, 영의 성불이며 하는 것들 때문에 업이 깊은 인간이었다. 그런 자신의 형님에게 더 큰 희생을 요구한다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박덕구를 뒤로 하고, 김현성은 더 대화할 의사를 잃은 듯 몸을 자리에 눕혔다. 제 아무리 요괴 행세를 해도 인간은 인간이다. 그는 밥을 먹어야 했고, 잠을 자야 했으며 몸을 가릴 따듯한 온기 역시 필요로 했다. 다만 오랜 야생 생활에 익숙해진 몸은 저가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었다. 그가 자는 사이 목숨을 앗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박덕구는 주먹을 꾹 쥐고 김현성의 등을 노려보았다. 과장을 더해 집채만한 주먹이었으나 요괴 아이 앞에서는 쪽도 못 펼 것이 분명했다.

 

이기영이 눈을 뜬 것은 꼬박 엿새가 지난 후의 일이었다. 눈을 뜨지 않는 이기영 탓에 김현성과 박덕구는 몇 차례 주먹다짐을 벌여야만 했다. 박덕구의 완패였으나 김현성이 그를 상대하며 애를 먹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제 부모에게 듣기로 도깨비는 힘만 강한 무식한 치들이라고 했는데, 씨근덕대며 달려드는 박덕구는 도깨비가 가진 힘 이상의 것을 지닌 듯 했다. 이기영이라는 자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김현성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기영의 존재는 김현성에게 부채였고 빚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긍지나 다름 없었기에.

이기영은 일어나자마자 드잡이질을 하는 김현성과 박덕구를 떼어놓아야만 했다.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거진 애를 써야 했고. 몸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김현성이 계속해서 기를 넣어준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애초에 기를 넣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으니 감사 인사를 건네기엔 애매한 상황이긴 하였다. 박덕구와 정하얀은 김현성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듯 했지만 여태 그랬듯이 말 몇 마디만 잘 전해주면 이내 수긍할 것이고, 중요한 것은 김현성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무력으로써의 김현성은 훌륭했으나 그가 갖는 의미는 단지 그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요괴와 인간을 잇는 연결점. 넘쳐 흐르는 요기를 억제할 수 있는 구심점. 그것을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에 김현성을 인세에 등장 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사람의 말을 안다고 해도 그 의미나 담겨있는 것들, 사람들의 문화 양식 따위를 모두 깨우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이기영은 김현성에게 산천에 널린 들꽃의 이름을, 커다란 도성에 사는 인간의 연유를, 연인들간에 오고 가는 애틋함을 가르쳤다. 김현성에게 이기영은 꽃의 이름이기도 하였고, 온 인간들을 다스리는 왕이기도 하였으며 사랑스러운 연인이기도 하였다. 붓 끝만 대었는 데도 먹이 스미는 화선지처럼 김현성은 모든 것을 이기영을 통해 알아갔다. 세상이 이내 그의 이름 세 글자로 가득 찼다. 이기영은 김현성의 근간을 이루는 글자나 다름 없었다.

요괴의 품에서 자란 김현성의 행동거지는 인간보다는 요괴에 가까웠다.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김현성은 바뀌어야 했다. 다행히도 이기영에게 요괴를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도깨비 놈도, 사회성 영 부족하던 몽마도 요괴 노릇하게 만든 자신이 아니던가. 스승질에 소질이 있다고는 빈말로도 말할 수 없었으나 김현성을 가르치는 일은 이기영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라야 자신보다는 저잣거리에 널린 학자들이 더 잘할 테지만, 이기영의 목적은 김현성에게 음습하고 치밀한 수작질을 부려 놓는 것이었다.

 

“스승님이라고 불러보겠습니까, 현성 씨?”

머뭇거리던 김현성의 입에서 환한 언어가 튀어 나왔다. 언어에 빛깔이 있다면 더없이 찬란했을, 그런 어조로 김현성이 이기영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예, 스승님. 기영 스승님.”

언어는 족쇄가 된다. 머릿속에 생각을 떠올리는 것으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생각은 확고한 사상이 되어 머릿속에 자리잡고, 이내 사람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스승님이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김현성의 뇌리에 그것은 깊이 각인 되었을 것이다. 나는 너의 스승이다. 이기영은 김현성의 스승이다. 변변한 스승 하나, 보호자 하나 갖춰보지 못했을 김현성에게는 참 달디 단 단어였을 터다. 애초에 좋은 스승이란 제자에게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해 보면 김현성에게 이기영은 최적이면서 최고의 스승이나 다름 없었다.

김현성은 배우는 것이 빨랐다. 기를 다루는 법을 일각도 안되어 깨우쳤을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특히 그 재능은 몸을 쓰는 일에 두각을 발휘하였다. 기본적인 검술만을 가르쳤을 뿐인데 어느새 김현성의 검술은 이기영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스승을 붙여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스승도 필요 없을 정도로 김현성은 꾸준히, 그리고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 중이었다. 검술에 관해서는 거의 무지한 이기영이라도 김현성의 발도를 보고 있자면 사뭇 새로운 감정이 들 정도였으니.

한참을 검을 연마하던 김현성이 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설마 배울 것을 모두 배웠으니 하산하겠습니다, 하는 말은 아니겠지. 조금 긴장한 채로 말하는 양을 지켜 보는데, 김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대와는 동 떨어진 종류의 것이었다.

 

“기영 씨. 덕구 씨는 정체가 무엇입니까?”

“돼지 새끼요? 새끼 도깨비가 아닙니까.”

우리 현성이가 무슨 일로 덕구에게 관심을 갖나. 덕구의 덩치가 좀 크긴 하지만 도깨비란 족속들이 원래 그런 법 아닌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답하자 김현성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보니 덕구를 주운 것도 어언 5년이 넘었던가? 낡은 짚신 인줄 알고 주운 신발 짝이 도깨비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알았다면 주울 생각은 커녕 도망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야밤에 ‘씨름하자!’하고 튀어나오는데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다. 도깨비 놈들의 멍청한 습성 탓에 비루먹은 체력으로도 이길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습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박덕구는 새끼 도깨비가 맞았다. 1000년도 안된 도깨비가 새끼지 뭐야. 게다가 큰 덩치로도 숨길 수 없는 멍청한 머리는… 여러모로 짠한 놈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마음이 갈 수 밖에.

“기영 씨, 덕구 씨는… 새끼 도깨비가 아닙니다.”

“예?”

“덕구 씨는 충분히 장성한 도깨비입니다. 아니, 도깨비 중에서도 꽤나 강한 편에 속할 겁니다.”

“하하. 현성 씨가 잘 모르시나 본데, 덕구는 아직 1000년도 채 살지 않았으니 새끼 도깨비가 맞습니다. 싸움 실력 역시 한 때 저에게 씨름을 졌을 정도로 뛰어나지 못합니다.”

반푼이 법사 옆에 붙어있는 반푼이 도깨비인 셈이었다. 스스로를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주위에도 반푼이 같은 놈들이 그득 찰 일은 또 뭔가. 이제는 김현성이 있으니 어찌 되어도 상관 없지만. 살짝 손을 뻗으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세를 낮춰, 손 끝에 얼굴을 대어오는 것에 마음 한구석이 선뜩하다.

“다른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는 기영 씨가 걱정 되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했더니 결국엔 이 쪽의 걱정을 하였단다. 박덕구가 이기영을 해칠 리가 없음은 무엇보다 이기영,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는데도 어쩐지 기꺼운 기분이 들었다. 겨우 인간 법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을 걱정했어요, 속삭이는 요괴의 아해라니. 누군지는 몰라도 좋은 교육자 아래에서 수업을 잘 받은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사람들 앞에 내보여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자, 김현성. 사람들 앞에 나아갈 준비는 되었나?

“현성 씨, 눈 감으세요.”

김현성의 눈꺼풀이 느리게 떨어졌다.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찬 느낌은 어떠할까. 완전한 타인에게 자신의 온전한 처분을 맡기는 기분은 어떠한 것일까? 떨리는 속눈썹 위로 빛무리의 조각이 들러 붙는다. 감긴 눈 위로 입을 맞추며 이기영이 입꼬리를 올렸다.

바야흐로 요괴의 아이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낼 시각이었다.

 

 

“그래서, 저 요괴가 더 이상 인간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공자. 공자에겐 그저 말로만 내뱉어도 되는 일이겠지만 이 성의 영주인 나에게는 민초들과의 신의가 달린 문제야.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얼마 뒤 내가 선 곳은 홍사성의 내부였다. 차희라의 의뢰였던만큼 그녀에게 먼저 경과를 보고하는 것이 옳았다. 짧은 시간 종적을 감추었음에도 차희라는 놀라지 않고 내 보고를 들었다. 그 놈의 공자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차희라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입에서 공자 소리가 나올 때마다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이런 내 반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더욱 꺼름칙 할 수 밖에. 공자, 라는 칭호에 낯빛이 안 좋아지자 더 웃어대는 것이 그 증거였다. 한발짝 앞으로 다가서자 차희라는 웃음을 그치곤 여유로운 눈으로 이 쪽을 응시했다.

“말로 안 된다면 직접 보여주면 된다는 거겠지, 누나?”

내 뒤에서 경계심 어린 눈으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던 김현성에게 눈짓을 하자 앞으로 천천히 나오는 것이 보였다.

 

“현성 씨. 상의를 벗고, 엎드리세요.”

요괴 틈에서 자란 김현성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행위인지 알지 못한다. 소문 자자한 ‘요괴의 아이’가 천천히 제 몸을 감싸고 있던 도포를 벗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 몸에 가득한 것은 자상과 상흔들. 탄탄한 근육 위에 새겨진 흉들은 어렵지 않게 김현성의 삶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느 장인의 조형물처럼 잘 짜여진 몸이 움직여 무릎을 꿇는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묘한 정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김현성은 내 앞에 엎드려선,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발 앞코에 입을 맞추었다. 이거지. 그가 입을 맞춘 곳에서부터 짜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에 입가에 절로 웃음이 새 나왔다.

“…쓸 만 한걸.”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차희라가 눈을 빛내며 상체를 이 쪽으로 가까이 숙였다. 붉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고 있는 것이 김현성의 모습이 그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한 성의 영주라고 해도 그녀는 기본적으로 호승심이 강한 인간이다. 눈 앞에 이런 싸우기 좋은 상대가 있는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모르긴 몰라도 한판 붙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일 것이다. 물론 성적인 의미가 아니고, 인간의 본능에 기반한 전투적인 느낌으로 말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차희라의 취향은 김현성 같은 미남자가 아니라, 나처럼 흰 피부에 가녀리고 색기를 띄는…. 그만두자.

 

“이제는 좀 믿을 수 있겠어?”

“그래, 안심은 되네. 이번엔 또 무슨 약점을 잡은 거야, 자기?”

“약점이라니. 서로 돕는 관계지.”

“내가 너를 몰라? 웃기지도 않는 소리는 집어 치우고… ‘그거’, 우리 쪽에 얼마간 빌려줄 수는 없나?”

약점이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호의로 김현성을 데리고 다니는 것뿐이다. 다행히 김현성은 ‘약점’이라는 말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한 말인데, 당연히 내 말을 믿는 것이 우선이겠지. 칭찬이라도 하듯이 김현성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시선을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귀엽기는. 우리 현성이, 스승님이 많이 예뻐해 줄게. 그대로 손을 내려 김현성의 턱을 잡고, 차희라에게로 들어 보였다. 다소곳이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를 대상으로 한 일. 고개를 들게 하자 싸늘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는 모습에 군복을 입은 자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 작자들, 무장도 하지 않은 이에게 겁먹은 모습을 보이다니. 여기 있는 인간들 중 제일 약할 나에게 붙들려 있음에도 김현성은 김현성이었다. 하룻밤에 악귀 500마리를 사냥한 인간. 자신을 토벌하러 온 도성의 군사들을 도륙 내서 성벽 밖에 버려둔 인간.

“감당할 수 있겠어?”

내 도발에 차희라의 눈썹이 재미 있다는 듯이 치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평소의 그녀라면 상대를 갈갈이 찢고도 남았을 소리였으나, 그녀의 총애를 받는 나에게 이 정도는 허용범위 내였다. 재밌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움직이고.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젔는다.

“됐어. 괜히 우리 애들에게 분란의 씨앗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으니.”

역시 차희라는 상황 판단이 빠른 인간이었다. 감당하지 못할 불은 되려 재앙이 되는 법이니까. 아무리 강한 그녀라지만 김현성과 싸웠을 때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싸움은 김현성에게 더 유리할 듯 싶었고. 오로지 무력만으로 작금의 자리를 쟁취한 차희라였으나 김현성은 태어나기를 요괴의 자식으로 태어나 20년 한평생을 투쟁 속에 살아온 인간인 것이다. 김현성의 턱을 놓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웃어 보이자 차희라가 웃음을 내비쳤다.

“공자, 오늘 밤은 내 방으로 와. 내가 좋아하는 향유 바르고, 속 비치게 옷은 얇은 흰 옷으로.”

…하여간에 뒤끝 있는 여자.

 

 

“…영 씨, 일어나 보세요. 기영 씨.”

새벽에 이 쪽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이 있었다. 차희라의 방에서 늦은 식경까지 밤을 지새운 터라 영 마뜩찮은 짓이었다.

“현성 씨, 조금만 더….”

웅얼대며 팔을 침대로 끌어당기니 안겨오는 몸이 잔뜩 굳어 있는 게 느껴졌다. 긴장이라도 한 건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진짜로 손만 잡고 잘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현성아. 품 안의 따듯한 생명체에서는 평소처럼의 풀 향기, 그리고 약간의 혈향이 풍겨 나왔다. 나 피 냄새 안좋아 하는데. 잠 기운을 빌어 웅얼거리자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소리를 내는 것이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구나 싶었다.

차희라에게 내건 조건은 김현성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수마가 너무 깊어 쉽사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래, 살인이든 뭐든 남이 했다고 뒤집어 씌우면 될 일이 아닌가. 사랑스러운 김현성이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김현성을 끌어안고 눈을 붙이니 단잠의 수렁에 빠지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었다.

“기영 씨….”

쌕쌕, 머릿칼 위로 드는 숨이 정말로 잠에 든 듯 싶었다. 좋아해요. 잠든 주인에게 내뱉는 서툰 고백 사이로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넘쳤다. 밀어가 나부끼는 침대 아래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뚝 뚝 흐르는 중이었다.

이기영이 그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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